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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Vet Oct 01. 2018

속죄와 보혈, <죄 많은 소녀>

라이브러리톡 GV 정리 & 개인적 소감

<죄 많은 소녀>

라이브러리톡 GV

박혜은 편집장 진행 (이하 ‘편’)

김의석 감독 참석 (이하 ‘감’)

※ <죄 많은 소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본 게시글은 라이브러리톡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최대한 읽기 좋도록 정리하였습니다.




※ 밑의 내용들은 간략하게, 제 언어로, 그리고 이해를 돕게 정리된 글이므로 원래의 대화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점 감안하고 읽기 바랍니다. ※



편: 오늘은 관객 질문 위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감독님, 관객 여러분께 한마디 해주시죠.


감: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볼 때마다 감상이 계속 변화합니다. 오늘의 답변은 오늘의 감상에서 나오는 답변입니다. 그리고 제 답변은 가이드가 될 수는 있지만 엄청난 해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답변하는 것이 걱정되는군요. (관객들 웃음)


편: 그럼 이제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Q01. 풍선에 반창고를 붙이고, 링거로 구멍을 뚫어 공기를 느끼는 장면은 어떤 의도였나요?


A01.

감: 시나리오는 2년 정도 동안 작성을 했습니다. 경험이 적어 중간중간에 시나리오 작업을 멈출 때도 있었습니다. 대신 그럴 때마다 저는 캐릭터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풍선 장면의 경우는 ‘원치 않게 살아난 영희가 다시 혼자 남겨지면 어떤 시간을 보낼까’란 고민에서 나온 장면입니다. 기획을 할 때에는 풍선이 줄어드는 것도 3~4개 정도의 단계로 나눴습니다. 속죄하겠다는 친구들이 풍선에 불어넣은 숨, 그 공기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영희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 풍선들을 보면서 친구들의 말과 소문과 평가와 시선 등에 하루 종일 생각이 묶여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서 나온 장면이었습니다.






Q02. 한솔이 자백을 한 후에, 어찌 보면 영희에게 가장 원망스러운 인물일 텐데 키스를 하고, 그 후에 계속 같이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필자의 질문이었다)


A02.

감: 먼저 그 키스는 한솔의 일방적인 키스였습니다. 영화를 만들 때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으므로 해석의 방향은 정하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 감상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고, 카메라와의 거리 안에서 배우들이 뜨겁게 연기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 씬에서 영희는 예측을 하지 못했고, 동의가 된 것이 아니었고, 잘 보시면 영희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게 약간 거부하는 듯한 느낌을 살렸는데, 그렇게 한 이유는 그 뒤의 이야기와 맞물린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희의 자살이 영화적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두 번 시작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죽고, 그 뒤는 영화로 재탄생하는 부분인 것입니다. 그 앞부분은 리얼 월드(감독님의 표현)라면, 그 뒷부분은 학교라는 사회로 초점이 옮겨오면서 영화로 재탄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광기에 젖어들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그 뒤의 영희는 실제 인물보다는 영화적인 인물, 시네마틱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부분에서 부재했던 경민의 자리에 영희가 다시 들어오며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영희가) 이들(주변 인물들)의 행동에 손대지 않고 그냥 바라보는데, 이들은 영희에게 와서 일방적으로 속죄하고, 주변에 있으면서 의중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영희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데, 영희를 대변하기도 하며 이야기를 진행했습니다. 한솔은 속죄를 했고, 영희가 그 속죄를 받았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도록 했습니다. 영희는 자기에게 속죄하겠다며 찾아오는 인물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몰랐던 이야기를 듣기도 하면서 인간에 대한 환멸을 얻기도 하는, 어떻게 보면 신적 존재가 되어 이야기를 바라보는 캐릭터가 되는 것입니다.


편: (답변 정리). 그러면 저도 한 가지 추가로 여쭤보고 싶습니다. ‘최대한 바라보겠다’라고 하셨지만, 촬영을 할 때 상당히 ‘오케이’가 안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관객들 웃음) 연출을 할 때 연기 디렉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합니다.


감: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면 전달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롱테이크를 많이 구상했었고, 연기가 방향이 없는, 목표가 없는 연기이기를 바랐습니다. ‘연기’를 하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이죠.


편: 진짜 어려운 연기를 시키셨군요. (관객들 웃음)


감: 성인을 연기하신 선배 배우분들은 이런 연출자를 만나보신 적들이 있어서 이런 분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도 해주시는 등 비교적 소통이 쉬웠습니다. 학생을 연기하신 배우분들은 신인이 많으셔서, 연기력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욕들이 많으셨고, 그래서 더욱 스스로가 깨지 못하는 부분들이 보였습니다.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제가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을 원한다는 것을 잘 말씀드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감정에 대한 명확한 단어 등(디렉팅)을 요구하셨는데 제가 무슨 거장도 아니고. (관객들 웃음). 그 단어를 향해 표현의 범위를 깎아 나가는 일이 없기를 바랐습니다. 우리가 한 단어를 이야기할 때도 무수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잖아요? 그 과정에서 미세하게 바뀌는 표정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많이 보이기를 바랐습니다.


편: 그래서 전여빈 배우의 경우는 작품 편수가 적기는 하나, 전작들에서 볼 수 없었던 표정들을 감독님의 디렉션 덕분에 이번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03. 저는 두 번째 보는 것인데 첫 관람 때는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영화의 폭력성이나 잔혹함이 힘들었고,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힘들었습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었습니다. 첫 관람한 날 저녁에 GV에서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해가 더 된 부분도 있었습니다. 전반부에는 경민이의 죽음같이 맥거핀들이 꽤 있었고, 후반부에 상징적인 것들이 많았는데(검은 물감을 뒤집어쓰는 환상 등) 그것들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개인적으로 추측할 때 자전적인 이야기란 점에서 꼭 개인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저도 창작을 하는 입장에 있는데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시면서 어떤 영향을 받으셨는지(해소가 되었다 등). 


편: 근데 잠깐 관객분에게 질문을 하고 싶은데, 영화가 썩 좋다고 느끼지 못했음에도 왜 영화를 또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질문자: 처음 볼 때는 너무 버거웠는데 감정이 가시고 나니까 놓쳤던 장면들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질문만 2분 동안 하셨다... 너무 길었다... 본인이 영화 쪽 전공이라는 이야기도 하시고 개인 평도 첨가된, 곁가지가 너무 긴 질문이었다... 결국 물어보고자 하는 것은 괜찮았기에 망정이지...)


A03.

감: 저도 힘들어서 요즘 이 영화를 잘 안 보고 있습니다. 일단 저는 맥거핀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말 확실하게 말씀드리는데 어떤 캐릭터도 맥거핀으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어떤 인물도 맥거핀으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설사 그렇게 보셨더라도, 저는 (맥거핀은 없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짧게 나온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게 그 인물을 존중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영희에게 몰입한다면, 이걸 미스터리로 받아들이신다면 경민의 죽음이 맥거핀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근데 이 영화는 확실하게 드러낼 부분과 아닌 부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경민의 사건은 밝혀내는 것이 잘못된 것이고, 밝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실을 밝히려고 파헤치는 것은 사체를 훼손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풀 수 없는 문제 앞에서 풀 수 있는 것처럼 오만한 자세를 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의사나 의중들은 남겨놓았습니다. 추측들(‘무엇 때문에 죽었을 것이다’ 등)은, 이유들은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자백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살하는 장면은 정말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그것이 이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진실을 찾아내는 것은 이미 장르적에서 많이 쓰이는 방식이고, 제가 겪어본 결과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이란 것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그것을 한두 단어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스터리나 스릴러의 장르를 탈피하고 싶었습니다. 심문이나 자백들의 고리가 서로 연결되지 않도록 상황을 구성했습니다. 또 시체가 드러나면서 미스터리가 사그라지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편: 보여주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셨군요. 그러면 어떤 것을 보여주려 하셨나요?


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감정들이었습니다. 제가 가까운 사람을 상실했을 때, 감정은 차례차례 오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복합적인 감정이 차올랐고, 그런 것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또 그런 점에서 영화적 쾌감을 경계했습니다. 현실보다 감정이 자제된 것입니다.


편: 그럼 이제 작품이 끝난 후의 본인에 대한 답변을 해주세요.


감: 그리고 작품을 만든 후에 전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도 말했던, 그리고 요즘에도 꾸는 악몽이 있습니다. 엄청난 무게의 구부러진 쇳덩이를 갖은 노력을 해서 곧게 펴도, 다음날은 다시 구부러져 있는 악몽을 꾸는데, 이 영화가 저에게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오히려 그때의 고통과 공포를 눈앞에서 (영화를 통해) 보게 되니까 더 무서워진 것 같아요. 아직도 무서움과 두려움이 남아있습니다.


편: 정말 진솔한 답변인 것 같습니다.






Q04. BIFF 버전에서 살짝 편집된 걸로 알고 있는데 아쉬운 장면이 있으셨던 건지, 그리고 사운드에 공을 많이 들이신 것 같은데 사운드 관련해서 이 장면은 알아줬으면 하는 장면이 있나요?


A04.

감: 3군데는 정말 기술적인 부분들만 다듬었고 딱 한 컷이 들어갔습니다. 제목 뜰 때 걸어가는 장면이 바로 그 장면인데, 원래 엔딩에 사용하는 것이었고 영희가 걷는 것으로 하려 했는데, 영희의 집중도가 너무 커지는 것 같아 영희를 향한 집중도를 경계하기 위해 경민으로 바꾸고 오프닝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운드는 정말 노력을 많이 했고,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나리오가 써지지 않을 때 편집을 제가 했습니다. 대략 8개월 동안 편집했는데 편집할 때 그 누구의 조언도 듣지 않고 혼자 편집했습니다. KAFA(한국 필름 아카데미) 규정이 연출자가 편집까지 같이 하는 것이 원칙이기도 합니다. 물론 중반이 지나면 편집자를 붙이거나, ‘찾아서 해라’ 이런 식으로 느슨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입니다. 근데 제가 영화를 엉망진창으로 배열해 놔서 저 말고는 그 누구도 알아볼 수가 없는 상태여서 그런 기회마저 놓쳐서 혼자 편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편집하면서 사운드의 가믹싱도 같이 했습니다. 먼저 인위적으로 참여해서 사운드를 과장하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대신 진정한 소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앰비언스’(원래는 ‘주변’ 또는 ‘싸여 있다’라는 뜻이지만, 음향 분야에서는 음장감(音場感), 임장감(臨場感) 등 음이 퍼지는 것을 의미 - 네이버 사전)에 집중했습니다. 앰비언스, 즉 이런 배경 소리를 줄이고 대사에 집중해야 영화가 한 지점으로 향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오히려 그걸 역이용해서 집중을 흐린다는 계산을 했고, 그걸 토대로 현장에서 앰비언스를 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촬영 끝난 뒤에도 그날 그곳의 사운드를 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두 테이크로 끝낼 수 있는 장면도 여러 번 찍기도 했습니다. 지하철 장면을 예시로 든다면 지하철이 오는 소리가 있고, 가는 소리가 있고, 사람의 수에 따라서도 소리가 변하는 등, 그런 다양한 경우들의 사운드를 모두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사운드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5.1ch을 처음 사용해봤는데 후방에도 소리를 넣을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후방 소리를 높이기 위해 전방 앰비언스와 후방 앰비언스를 다른 트랙으로 녹음해서, 카메라도 한 명의 군중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 사운드 믹싱에서 둘의 차이를 강조하는 등의 노력을 했습니다. 믹싱 기사님은 (후방을) 너무 높이고 있다고 주의를 주시기도 했지만 실험 영화니까. (관객들 웃음). 이런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05. 곡성 연출부에 계시면서 받은 영향이 있는지, 그리고 피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지(생리, 한솔 셔츠 소매의 피 한 방울, 커터칼 장면), 영희가 거북목 같은데 배우가 원래 거북목인 것인지, 아니면 설정인지 궁금합니다.


A05.

감: 곡성 연출부에서는 영화(촬영 현장)의 메커니즘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프 더 레코드'를 부탁하신 부분이 있어 한 줄로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의 경우는 지나치게 관념적인 얘기가 될 것 같아 그동안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했지만, 오늘은 ‘끝장 GV’이니 이야기하려 합니다. ‘보혈’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신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뭔가 확실하게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한 가지가 육체, 그중에서도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많은 종교들의 기본이 되는구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고통은 소리와 같아서 사그라드는 것 아닐까, 나의 몸이 정말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인데 과연 그게 진짜로 중요한 것일까 등등 인간은 그것을 너무 과하게 믿고 있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고 자해 그런 것들은 거기에서 착안된 생각이었습니다. 생리혈은 이와는 아예 다른 의미였습니다. 앞선 이야기는 한솔 학생 셔츠의 와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생리혈은 남성인 제가 모르는 영역이자 고통이기 때문에 (배를 부여잡거나 ‘오늘 예민한 날이야’ 이런 식의 은유적인 방법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이런(생리혈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캐릭터를 기만하지 않고 제가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관객과 캐릭터의 일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온 장면입니다. 이 영화가 저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남성인) 제가 이런 캐릭터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이 정도면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의도에서 나온 장면이기도 합니다. 생리를, 배를 붙잡는 그런 은유적인 방법이 아니라 정확하고 확실하게 피를 보여줌으로써 ‘이 친구는 고통을 겪고 있고, 그 고통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 또한 담고 있습니다.






Q06. 자살하는 방식에 관한 전반적인 질문(왜 영희는 장례식장에서 고통스러운 방법을 택했는가, 자살 방법을 뺐어갔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 등등), 그리고 취조 장면에서 취조를 받는 학생의 부모님은 불참하는 등 미성년자의 세계에서 어른들은 왜 배제되고, 취조당하는 쪽은 배려되지 않는가요?


A06.

감: 취조받는 쪽 부모님의 불참은 즉흥적이고 갑작스러워야 진실되고, 가장 방대한 증언이 나올 것이라는 형사의 판단에 의한 것이고, 원래 이걸 설명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줄이면서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어서 줄이게 됐습니다. 그리고 배려가 묵살되는 것 또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사태를 보여주기 위해 아이들의 위태로운 세계를 어른에게서 떼어놓았습니다. 그래서 후반부에 아이들의 세계에 집중할 때, 법이나 논리 같은 울타리가 있는 것 같지만 사각지대가 있는, 굉장히 복합적이라는 것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자살 수단의 이야기. 공업용 락스였는데, 방법과 수단이라는 것은 고민할만한 부분인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방법을 택했지?’ 이것이 굉장히 쇼크였습니다.  그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것과 관련된 장면이 영희가 락스를 마시기 전의 장면입니다. 원래는 촬영 전까지 마시는 것만 연습하고, 마시기 전의 표정을 공백으로 남겨두다가 이틀 전에 그 표정은 평온한 얼굴, 즉 결정을 내리기 직전의 평온을 찾은 상태, 그래서 그 행위에만 집중하는 상태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자세히는 전여빈 배우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이것과 연결 지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수단이란 것은 이미 결정된 것이라 계획적이고 집요하지 않고, 즉흥적이면서 고민하지 않는, 명확한, 그런 과정을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완전히 태풍의 눈같이 고요한, 현장에 있는 무언가로 결정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Q07. 학생들이 선생을 공격하는 것, 주도는 영희가 했는데 왜 다솜이가 나서는가요?


A07.

감: 일단 주도한 것은 영희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영희와 같이 몰려다니며 속죄받기 위해 자의적으로 나서는 상태로 설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영희는 그런 일들이 벌어져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다솜이란 캐릭터를 발굴하면, 밸런스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저곳에 붙는 캐릭터이죠. 영희에게 린치 할 때 커터칼을 꺼내고 한솔에게 건네어준 인물도 다솜이고, 영희가 민경을 죽인 것이 확실한데 동정표를 받기 위해 자살 시도를 죽지 않을 정도로만 했다는 소문을 어두운 데에서 퍼뜨리는 것도 다솜이입니다. 그리고 다솜이가 선생님을 공격하고 상처가 났는데 이 정도로는 안될 것 같아 상처를 더 크게 내서 영희를 쳐다보는 것도 본인이 속죄를 이만큼 했다는 것의 과시입니다. 저는 후반부의 이야기는 클라이맥스지만 주인공이 퇴장한, 새로운 인물들이 주인공이 되는 것으로 설정을 했습니다.






Q08. 기독교적 코드나 레퍼런스로 다가오는 것이 많았습니다(‘죄 많은’→ 동성애, 해악, 자살 등등, 영희의 부활→ 구멍이 생김 ≒예수, 한솔의 키스 ≒가롯 유다 등등). 원래 구상한 것이었나요, 아니면 후에 해석이 추가된 것인가요?


A08.

감: 먼저 아까 말을 전하지 못했는데,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거짓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장면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복수가 통쾌하지만 비정상적이길 바라는 마음에 사로잡혀 좀 극단적으로 몰아갔지만, 요즘 들어서 논란이 될만하고 또 그 장면으로 인해 상처받는 분들이 계실까 봐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관객 여러분께 전합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애초에 종교적 메타포들을 가져오려고 했습니다(감독님은 패러디란 표현을 쓰셨음). 질문하신 것처럼 가져오려 한 것은 아니었고, 저에겐 경민의 죽음이 신성하게 다가왔고, 그렇기 때문에 그 죽음이 퍼즐인데 건드릴 수 없는 퍼즐이길 바랐습니다. 저는 제 친구의 죽음이 엄청나게 크게 와 닿았었고, 그걸로 인한 충격이 커서, 종교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종교가 처음에 생겼을 때는, 어쩌면 사소한 누군가의 죽음을 해석하는 과정과 그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란 상상을 하며, 그런 패기를 부렸습니다.


편: 이미 예정된 1시간은 끝났습니다만, ‘끝장’ GV를 예고하며 시작했으니, 손을 든 분들이 없을 때까지...ㅎㅎ 농담이고요, 두 분정도만 더 받아보겠습니다.






Q09. 학교의 대처하는 모습이 상당히 구시대적인데 의도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경민의 엄마는 퇴사할 때 아이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인가요?


A09.

감: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맞습니다. 만약에 죽음을 이야기하고 퇴사했다면 그 이야기는 유령처럼 회사 안을 떠돌 테니까요. (경민의 어머니는) 사회적인 지위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별로 패배해 본 적도 없는 성공한 여성이기에 그런 것을 정말 싫어했고, 그래서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자기 죄책감이 정말 큰 상황이기 때문에 일어서려는 마음, 즉 자기 탓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마음이 큰 만큼과 그에 따라 생기는 책임감도 큰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혼한 상태라는 것도 배경 설정이지만, 이것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의 경우는 구시대적인 모습과 현대적인 모습을 적절히 섞으려고 했고, 어느 정도의 사실성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오프 더 레코드'를 부탁하신 부분이 있어 한 줄로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Q10. 익사체를 본 것이 환상이 아닌지, 영희의 자살은 분노가 주가 아니었는지, 그리고 연출적인 부분에서 나눠지는 것에 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A10.

감: 먼저 익사체의 설정은 보름~1달 정도 된 익사체인데, (영화 속에서) 보신 것보다 살짝 이른 모습입니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 4분께 자문을 구한 모습이고, 피부의 한계 때문에 부풀어 오르는 것도 정도가 있으며, 제작 환경의 제한 때문에 조금만 부풀리고 색에 변화를 주는 것으로 표현을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영희가 자살을 시도한 다음 장면이 학교 내 한솔 학생 셔츠의 피를 조명하는 장면인데, 이 부분이 2부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로 넘어오면서 영희의 죽음이 끝났다고 생각을 하고, 어떤 분들은 수화가 2부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하시기도 하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희의 자살에 관해서 물론 저는 분노도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의 감정이 아닌, 여러 감정이 동반되는 상태라고 생각했습니다. 환멸일 수도 있고, 인간의 신뢰가 붕괴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분노로 보신 것도 정확하게 보셨다고 생각합니다.






Q11. 장례식장의 굿 장면은 사람들의 영희를 향한 시선을 피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를 담은 것인지, 그리고 감독님은 관람 등급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는가요?


A11.

감: 먼저 등급은 19세로 생각 중이었고, (19세 여야 한다고) 주장도 했습니다. 너무 자기고백적이고 염세적인 영화라 누군가가 영향을 받고 상처받지 않을까 싶은 걱정과 우려가 컸고,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도 계속되는 중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GV에서 다 털어놓고 좀 후련해지기를 바랍니다. (관객들 웃음)


영희와 굿 장면은 분리하고 싶었습니다. 영희는 장례식장에 등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초대되지 않은 이방인의 역할입니다. 다들 쉬쉬하는 과정에서 배제됐으나 본인이 기어코 온 인물이고, 굿 장면에서 무당의 말들은 접신일 수도 있으나 유가족을 위한 위로의 의도가 담긴 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특별한 의도는 없었고요. 그러나 그 과정들을 보면서 영희도 느끼는 것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다음에 영희의 얼굴이 단독으로 나오고, 자살 시도를 하고, 2부부터는 그런 것들의 반복되는 형태, 남겨진 사람들이 애도하는 그런 형태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Q12. 원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원작이 없어서 시나리오집을 발간하실 생각이 있으신 지 궁금합니다.


A12.

감: 이 정도로 보여드리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더 공개된다면 더 괴로웠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정도로 칭찬받고, 혹은 지탄받으며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편: 마지막 질문이 정말 마지막 질문에 어울리는 질문이었습니다. 감독님과의 첫 GV인데, 감독님의 ‘경계’가 반가웠습니다. 그만큼 어떤 이야기를 과하지 않게, 넘치지 않게, 흐트러지지 않게 하려는 감독님의 모습이 반가웠고, 사운드 활용에서 기존 방식에 역행하는 시도를 하시는 등 청개구리 같은 연출자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죄 많은 소녀>는 정말 반가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종교 행위를 통해서 얻게 되는 위안이 자칫하면 얼마나 위악스럽고 껍데기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등급 이야기는 저의 15세를 돌아보면 저의 경우 또한 굉장히 고통스럽고 잔혹할 만한 시절이었는데, 저도 그걸 알고 있기에 모방의 위험보다는 오히려 청소년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지나고 나면 15세는 어린 나이지만 그 나이에서는 그 고통들을 같이 보면서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청소년들도 볼 수 있는 것이 좋은 결과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오늘 질문들 모두 예리하고 좋았고, 감독님도 끝장을 보며 답변들 후련하게 털어놓으셨는데, 앞으로 차기작 통해 다시 뵐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의 GV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박수)





감독님과의 셀카 한 장. 가리길 잘 한 것 같다.


상당히 많은 생각이 들었던 영화이다.


대학생으로서 교우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고, 작년의 고등학생으로서 공교육 환경을 돌아볼 수 있었고, 개신교 신자로서 신앙에 대한 개인 점검 시간도 가졌고, 사람이란 존재가 얼마나 근원적으로 악한지 반추할 수 있었다. 인간이 얼마나 악하고 이기적인지를 잘 표현해낸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다소 과대평가가 있었다는 생각은 조금 든다. 어떤 장면들의 편집점은 투박했고, 설명이 모자란 부분 또한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다양한 논점들을 가지고 우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를 물으며 개인의 양심을 건드리고,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애써 무시해왔던 내면의 악과 위선들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라이브러리톡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개인적으로 이번이 가장 날 것의 GV 느낌이었고 가장 신선했다.


감독님이 아직 미숙하다는 것이 확실하게 와 닿았다. 생각도 깊으시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으시다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말씀을 하심에 있어서 정리가 덜 돼있고, 표현이 서툴다는 느낌은 피할 수 없었다. 허나, 그것마저 매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이번 GV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감독님의 영화를 향한 순정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뭔가 파릇파릇한 느낌을 받았달까. 분명 어둡고 힘든 분위기의 영화이고, 답변의 내용들 또한 영화의 분위기를 따라갔지만 GV 자체의 분위기는 생기가 넘쳤다.


스테레오 타입에 젖어 들어 이렇다 할 개성이 죽어가는 한국 영화계에서, 독립영화라는 영역은 아직 그 개성이 살아숨쉬는 한국 영화계의 오아시스와도 같다. 앞으로 한국 독립영화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기를 바란다.



- CineV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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