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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문철 Apr 19. 2020

뭐? 교회 역사에서도 인싸가 있다고?

오언 채드윅, "종교개혁사"

오언 채드윅, 종교개혁사 


2년 전에 읽고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되었다. 처음 볼 때는 종교개혁이 일어난 배경과 그 속에 있는 루터의 열정을 중심으로 봤다. 그런데 책이라는 것이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영감을 준다고 했었나? 확실히 2번째 읽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칼빈주의의 영향력이다. 루터와 같은 흐름 속에서 칼빈이 주도한 종교개혁은 다시 정통으로 되돌아 가고자 하는 흐름과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가톨릭에서는 자신이 보편이라 주장하는 반면에 다시 정통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런 지점에서 개혁을 위한 외침은 그 속에서 여러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종교개혁은 순수하게 종교를 위한 것은 아니다. 중세가 교회와 정부의 밀접한 연관을 의미할 테니까 종교개혁은 곧 다른 말로 정부개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여기서 정부개혁이란 것은 정부 자체를 뒤엎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대한 종교의 영향을 줄인다는 의미다. 


약간 그런 인싸들이 잘 나가면 그 뒤에서 뒷 이야기가 슬금슬금 나오는 것처럼 칼빈주의의 영향 속에서 그 외침과 사상들이 확대되자 칼빈주의를 향한 공격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래서 인싸들은 안돼 그들은 '진짜'다. 


개혁교회의 성장은 성경 그 자체로 돌아가자는 목표에 있다. 루터교의 분열도 한 몫하는 것도 있지만 개혁교회에서 일치된 신조를 주장하는 것에 있다. 아무래도 그리스도인을 하나로 묶는 형태는 그들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개혁이라는 지점에서 분열에 대한 불안은 분명 치유를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개혁교회의 일치는 분명 그들을 위로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지점에서 칼빈주의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인 부분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 성장하고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확실히 정치적 의도 속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독일 상황은 전형적으로 루터파가 지배하면서 개혁파 목사들은 완전히 배제되고, 개혁파가 지배하면 루터파 목사들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동기들과 개인적인 성향에 의하여, 헨리 8세에서부터 메리 때까지 있었던 종교적 분쟁에 의해서 분할된 국가의 여론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통합하려고 했다.
- 오언 채드윅, "종교개혁사" 중에서 - p.218

   

그런 점에서 정치적 형태는 루터교와 칼빈주의 모두에게 해당될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누군가 잘 나가고 다른 쪽도 잘 나가게 된다면 누가 '진짜'냐에 대한 대결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쩌면 한 학급에서 누가 제일 인싸냐에 대한 기싸움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 점에서 아싸는 항상 운다. 아무도 아싸는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니까?


자 그렇다면 칼빈주의가 새롭게 떠오르는 인싸 라면 그전에 최고 인싸였던 가톨릭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반동 종교개혁의 모습을 보인다. 아이러니하게 종교개혁은 교황권에 대한 싸움을 했던 것인데도 불구하고 가톨릭은 교황권에 대한 강조를 이루어낸다. 그것이 바로 교황무오설이다. 


그것은 가톨릭에서 행해진 전통이라는 것들을 한번 더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교리뿐 아니라 경건 생활에서도,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은 가톨릭교도들을 그들이 비판하거나 무너뜨린 관행들을 한층 더 높게 평가하도록 몰고 갔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 오언 채드윅, "종교개혁사" 중에서 - p.306 


이러한 지점에서 종교개혁이 남겨주는 의미는 몇 가지 있다. 일단 종교개혁 이전까지 교회에서 부당하게 거두어들인 부귀영화는 더 이상 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은 귀족들이 억압하던 평신도들에게 돌아갔다는 말이 된다. 즉 경제력이 평신도들에게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전통에 서 있던 비평가들은 성경과 현실 교회 사이의 괴리감을 고통스럽게 의식했다. 서방 교회의 절반은 현실 교회를 성경을 이해하는 열쇠로 선택했고, 나머지 절반은 현실 교회를 판단하는 잣대로 성경을 선택했다. 서방 기독교 세계는 분열된 채 통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 오언 채드윅, "종교개혁사" 중에서 - p.468


이러한 흐름은 확실히 골 깊게 파인 듯한 느낌을 준다. 교리와 경건이라는 틀을 성경적으로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성경으로 그것을 확대할 것인지에 대한 분열은 서로를 화합할 수 없을 정도로 갈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교회 역사에서 누가 '인싸'가 되느냐는 문제는 서로의 갈등을 더욱 깊게 했다. 인싸가 되는 것은 교회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이기도 했고 어떤 세력을 형성하는가에 따라서 인싸가 순식간에 아싸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볼 때는 잘 나가는 게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뭔가 아싸 다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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