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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문철 May 29. 2020

권리를 보장하는 건 무엇인가

스테파니 데구이어 하고 여러명, "권리를 가질 권리"

스테파니 데구이어, 알라스테어 헌트, 라이다 맥스웰, 새뮤얼 모인, 권리를 가질 권리 


교회에 다니는 청년 한 명이 이 책을 읽고 간단한 평가를 하길래 봤다. 그리고 그 내용이 무척 깊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권리를 가질 권리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생각보다 권리에 대해 낙천적이고 소유적인 측면으로 여기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인간의 권리는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낙천적이고 누구나 그것을 추구하고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소유적인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한나 아렌트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야 한나 아렌트가 권리에 대한 사유를 가장 삶에서 직접적으로 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세계대전이 시작하면서 국가로부터 '시민권'을 박탈당하였다.


시민권을 박탈했다는 것은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독일로부터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영국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독일 국민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또한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이민자를 입국 금지하게 됨으로써 인간이라는 점에서 어떠한 생존의 보장을 받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학창시절에 도덕과 윤리를 배우면서 '인간의 권리'는 '천부적인 것'으로 배워왔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최소한의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철학의 역사에서 선의지로 여겨지거나 또는 자연법으로 여겨지면서 많은 철학자에게 기본이 되는 사상의 근본을 제공했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권리'는 그것을 보장할 수 있는 '공동체'에 속해 있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큰 틀에서 말하고자 한다면 인권은 사실상 시민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공동체 안에서 인간의 권리에 대해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준다. 


따라서 인권을 천부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개념은 사실상 인간에 대한 낙관주의적인 경향을 지닌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인권을 '소유'로서가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의미로 '가진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권리에 대한 것은 권력을 절실히 보여준다. 


권리에 대해 호소한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권력에 대해 호소하는 것이며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한다. 여기서 느껴지는 것은 맬서스가 "약한 자를 도와주는 것은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생존에 대해 위협하는 기만적인 행위다."라고 말하는게 떠오른다. 


그가 말하는 것이 분명 사실적이고 합리적인 말이 맞기는 하지만 매우 냉철하고 어떠한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권리를 위한 권리를 말한다는 것도 결국 권력을 위한 행위라는 지점에서는 사회적 약자에게 어떠한 공감성을 이끌지 못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권리는 곧 공동체에 근거한다. 따라서 그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간 사람은 혐오사회를 저술한 카롤린 엠케의 말처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인간의 권리를 근거짓는 것이 공동체의 보장에 의해서라면 그들은 어떠한 권리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 .


그런 점에서 그들이 하는 행위나 문화를 변증하고 설명해야 하는 책임이 그들을 향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가 자신의 행위는 정당하다고 여러 국가에 입증하고 서류상으로 인준을 받기 위한 것처럼 말이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정독하게 싶게 만드는 책이었으며 또한 사람들과 함께 독서모임이라던가 그런 모임에서 나누기 좋은 책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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