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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야스퍼스, 계시에 직면한 철학적 신앙
이 책의 위대함은 그가 주장하는 철학적 신앙에 대해 실존론적인 책임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이데거 이후로 많은 철학과 신학은 '실존'을 중심으로 사유하게 되었다.
특히나 사르트르와 같이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무'의 지평을 연 학자가 있는 반면 야스퍼스는 자신의 사상이 기독교 신앙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것을 인지하고 철학적 신앙에 대해 기술한다는 것은 특별하다.
인간은 오성, 흔히 말하는 이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성을 통해서 대상을 관찰할 때 우리는 바라보는 '주체'와 바라봐지는 '객체'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근대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데 데카르트의 '연장'개념에 있어서 주체는 항상 객체를 포함하게 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즉 주체라는 말에는 언제나 '객체' 혹은 '대상'이라는 짝이 따라다닙니다.
- 이진경, "철학과 굴뚝청소부" 중에서 - p.43
즉, 근대 이후 주체와 객체의 분열은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과 인식의 결과가 서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내포하게 된다. 주객의 분열 속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한계 상황'이다. 이 상황은 우리가 실존론적으로 언제나 인지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성이라 할 수 있다.
한계상황에서 느끼는 현존재의 현상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포괄자에 대한 인식으로 인도한다. 주체와 객체를 포괄하는 이 상황은 우리에게 현상 속에서 나타난 초월자에 대한 인식으로 제한하게 된다.
칸트에 의해서 궁극적으로 밝혀지고 드러난 고대적인 철학적인 통찰을 먼저 말하자면, 세계 내에서의 눈과 우리 자신이면서 그 안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빛은 우리에게 있어서 존재의 양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 칼 야스퍼스, "계시에 직면한 철학적 신앙" 중에서 - p.34
인식에 의해서 제한된 것을 야스퍼스는 '철학적 근본 조작'으로 부른다. 인간은 자신의 주객의 분열과 한계상황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말하기 위해 철학적으로 조작한다는 의미다.
쉽게 예를 들 수 있다면 헤라클레이토스가 강가에서 깨달은 어떠한 '상황'은 그 스스로가 현상성 속에서 존재의 탈은폐를 경험함으로써 그것을 말하기 위해 조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로고스'로 조작되어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것을 드러내는 하나의 언어가 아니라 '암호'로 해석해야 하는 게 철학적 신앙의 요점이다.
역사적인 암호들 속에서 인간은 현실성의 진리를 통찰하여 왔다. 이러한 암호는 다양하게 해석돼야 하는데 그 내용은 문화적이고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는 암호들을 통해 초월자를 지향하여 사유하게 되며 초월자의 언어를 듣게 된다.
- 칼 야스퍼스, "계시에 직면한 철학적 신앙" 중에서 - p.157
따라서 계시 신앙과 배치되는 철학적 신앙은 그 내용에 있어서 교회 전통의 확실함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과 합리적 사유 속에서 신의 의미에 대해 사유할 수 없는 것을 암호 해석을 통해서 의미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분명히 과학은 유물론적인 입장에서 어떠한 초자연적인 개입을 배제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야스퍼스는 과학적 방법의 사유를 인정하지만 그 자체로서 과학이 한계 상황을 극복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일종의 '신 없음'도 하나의 초월자에 대한 암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 일반을 통한 인식에 있어서도 이런 다른 포괄자는 현존한다.
- 칼 야스퍼스, "계시에 직면한 철학적 신앙" 중에서 - p.403
암호에 앞서는 존재, 즉 세계 내에서 주어지는 모든 대상성이나 현실적인 실재들과는 거리가 멀며 따라서 세계로부터 본다면 무(無)가 되는 그러한 존재는 우리의 사고능력을 뛰어넘는 것으로 스스로 절대적이 되려고 하는 모든 암호를 거부한다.
- 칼 야스퍼스, "계시에 직면한 철학적 신앙" 중에서 - p.434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철학적 신앙을 통해서 암호 해독에 힘을 쓰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관념에 머무르거나 사변적인 신학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언제나 한계상황을 극복하고자 한다는 점에 있다. 한계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인간 스스로의 제한적인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삼위일체의 경륜으로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을 해석하기 위해서 바로 철학적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위일체의 경륜을 하나의 암호로서 또 다른 사람에게는 '무'의 지평으로서 또 다른 누군가는 유물론적 해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야스퍼스가 암호해독으로 줄 수 있는 의미는 바로 교회 밖에 벗어난 사람들에게 있어서, 계시 신앙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과학주의적 유물론에 대해서 다시금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 신비의 창원으로만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평점 : ★★★★ (인생 책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