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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문철 Jan 23. 2022

내 삶의 시간에 대하여

안리타, 사라지는 살아지는 

본 리뷰는 적당한 내용 분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당당뉴스"에 기재된 칼럼임을 밝힙니다.



안리타, 사라지는 살아지는


01. 자신의 시간을 살기, 그리고 사라지기

누구나 ‘자신의 시간’은 필요하다. 대게 외롭고, 힘들 때 다른 사람의 위로를 통해서 새로운 힘을 얻고는 하지만 위로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그때 사람은 심연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심연이 바로 자신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고독하기도 한데, 고독을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더욱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번 책은 그런 심연을 들여다보는 순간이다. 


사실상 자신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뿐이다. 그 모습에는 지난날에 대한 후회도 있을 수 있고, 절망 또는 기쁨, 다양한 감정들이 녹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언제나 자신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심연을 들여다보는 순간은 단지 ‘현재’일 뿐이며 바로 사라진다. 감정은 사라지지만 언제나 가슴 속에서 살아간다. 왜냐하면 그 경험은 지속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는 여기서 나에게 사라지는 것과 살아지는 것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나간 순간들은 분명 다시 돌아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힘을 준다. 


나에게 그런 순간이 있는가? 나는 그런 심연을 들여다 본 적이 있는가? 


물론 오늘날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이 비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해를 보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이번 책을 통해서 주는 것은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사라지고, 살아지는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그 구절은 “Ich bin da, und warte auf dich ewig”이다. “나는 그곳에 있다, 그리고 당신을 영원히 기다린다”라는 구절 속에서 책의 제목과 결이 비슷하게 사라짐과 기다림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사라짐은 곧 기다림이다. 사라짐이 왜 기다림이 되는가, 그것을 작가는 “꽃”을 통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꽃이 피고 지는 과정에서 다시 피기 위해서는 인내를 해야 한다. 


꽃이 피는 순간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가면 말 그대로 사라짐을 경험한다. 사라짐은 동시에 다음 계절을 위한 기다림이 된다. 그런 것처럼 상실감은 지속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지속되는 상실감은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울한 게 아니라, 우울하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몰라요.”와 같을 지도 모른다. 우울한 감정은 솔직한 마음으로 받아들을 수 있지만, 우울함의 지속은 다른 이야기다. 


자신은 자신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내 삶의 시간에 대해서 알아둬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글을 마음에 적어두어야 한다. 그런 생각이 가능하게 된다면, 생각으로 인하여 변화할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내 삶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사라지고 살아지는 순간들과 사라짐으로 인한 새로운 기다림이 있다는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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