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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문철 Jun 17. 2023

삶이 투쟁의 연속인 행복과 의미도없는 유아론적 가르침

세이노, 세이노의 가르침

책 안비싸서 진짜 다행이다


1. Im Buch geht es um Leben. Aber zur Lösung des Problems kommen viele Möglichkeiten nicht in Betracht, um gut zu leben. Ist das Leben immer nur eine Konkurrenz? Ich denke es nicht, weil man eine Bedeutung durch philosophischen Glaube haben kann.

- 책의 주제는 결국 삶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많은 방법들이 고려되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삶은 그저 경쟁일 뿐인가? 사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철학적 신앙을 통해서 삶에 관한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세이노의 가르침, 요새 베스트 셀러에 올라가있는 책이고 거기다 책 값도 싸고 심지어 이북은 무료라고 하니까 보게 되었다. 여러모임에 가서 이 책에 대해서 언급을 하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단한 책이다.


생각하기에 요즘 독자들은 작가들이 매운맛으로 써도 그렇게 신경쓰지는 않는가보다. 뭐 엽떡도 잘먹고 불닭볶음면도 잘먹는 한국사람이니까 글의 매운맛정도는 아무것도 아닐려나? 오늘날 욜로, 워라벨을 중요시 여기는 젊은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책을 좋아라 하고 많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하다.


특히나 아이러니한 부분은 이런 지점들이다. 오늘날 윤리적 기준이나 쾌,불쾌의 기준은 본인에게 있다. 이런 기준을 외부에서 찾거나 절대적 기준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런 기준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어서 차별과 폭력이 있었을 테니 그런 경향을 거부한다.


그런 점에서 무엇을 판단하는 기준도 결국 본인에게 있다는 말은 남의 판단과 자신의 판단은 연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있어서 무엇이 좋고, 쾌할지라도 다른 이에게 그렇지 않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너는 그런것이다라고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지점에서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기준이나 선은 불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들이 주는 선과 기준에 대해서는 많이 공감을 하고 따르려고 한다. 그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사람들이 기준을 원하고 누군가 자신을 이끌어 주기를 원한다는 강렬한 요구다. 그리고 그런 카리스마 있는 가르침은 꽤나 유용하고 인기가 많다.




2. Wie sollen wir leben? Es fehlt uns Lösung. Deshalb ist es wichtig, warum wir leben müssen.

- 어떻게 우리는 살아야 하는가? 우리에겐 답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왜 살아가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은 중요하다-


자고로 자기계발서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에 관해 나온다. 그리고 더 나아간다면 왜 살아아 하는지도 제안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책에서도 청춘들이 돈을 잘 벌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왜 그래야 하는 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아니 이 이야기를 작가에게 한다면 화를 낼지도 모른다. 타인의 삶에 대해서 누가 목적을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이 어디있겠냐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정답이다. 하지만 전자의 내용을 말하기 위해서는 결국 각자의 삶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자기가 생각하는 삶과 다르다면 굉장히 무의미하거나 또는 무쓸모하다고 생각하고 그걸 주장하고 있다.


책의 주된 내용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이다. 그리고 그 내용에는 꽤나 좋은 내용들이 있다. 예를 하나 든다면 누군가 일을 시켰을 때 그것 하나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만약에 누군가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서 가져다 달라"라고 말한다면 휴지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을 쓰고 손을 닦기 위해 페이퍼 타월도 가져가고 핸드워시도 가져가라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의 틀을 넓혀서 일을 한다면 큰 결과를 맺는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책의 유용성이 앞에서 들었던 예시 말고는 딱히 좋은 말은 없는 듯하다. 특히나 이 책에 대한 평가를 본다면 나이 많은 아저씨가 해주는 매운맛 조언이라고 한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 어느 면에서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아저씨가 하는 이야기가 매운 맛이라는 말은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 어느정도 스트레스 해소 또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인데, 그렇게 내가 보기엔 매력적이지 않은 글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인가?


그것은 작가와 내가 삶에 대한 초점이 생각보다 많이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왜라는 질문에 대해 꽂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작가는 왜라는 질문은 나중에 찾고 어떻게 할 것인지 부터 생각하라는 타입간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도 좋지만 굶어 죽게 생겼는데 무슨 의미냐 라는 느낌이다. 힘들다 죽겠따 하는 사람 치고 힘든 사람 없고 죽는 사람 없다. 진짜 힘든 사람은 그런 말을 할 겨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


물론 오늘날 이런 질문이 굉장히 어색하고, 또는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딱 작가는 이 타입에 속한다. 그런거 신경 쓸 시간에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 몸값을 올리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8시간 근무, 주 5일제, 주 4일에 좋아하지 말라고 한다. 그 시간에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 가치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쉴거 다 쉬고 놀거 다 놀면 그대로고 나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 친구는 더 높은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너무 맞는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지위불안, 위치불안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인데 너는 공상에 사냐고 작가가 대답할 수 있다. 맞다, 현실은 약육강식이고 시궁창이라 표현할 정도로 잔인하다. 세상은 잔인하고 무섭지만 세상은 잔인하기만 하지 않고 무섭지만은 않다. 세상은 다양하다. 그 말은 즉슨 세상에 대해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세계정위의 관한 질문이다.




3. Er hat eine sinnlose unglückliche Erfahrung seines Lebens, deshalb ist seine Belehrung nur Solipsismus.

- 그는 그의 삶에 구저 무의미하고 불행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조언은 그저 유아론적일 뿐이다 -


책의 후반부를 보면 아버지와의 관계와 추억을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만약 그것을 먼저 보았다면 그의 분노와 글의 형태와 삶의 가치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가 아무래도 나이가 많고 삶의 경험이 많고, 실제로 돈이 굉장히 많은 사업가라는 점에서 나는 그에게 어떠한 코멘트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그가 조언을 할 수 있는 이유도 결국은 앞서 말한 자신의 위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하는 말들은 그런 것과 상관이 없고 나 역시 그것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모든 이유와 사상과 판단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려고 한다. 그말은 그의 세계는 여전히 유아론적이라는 사실이다.


삶은 투쟁이다. 많은 철학자도 그것에 대해서 동일하게 이야기 했고, 우리가 느끼는 세상 역시 투쟁이다. 작가도 마찬가지로 삶은 투쟁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니체와 세이노의 차이는 무엇인가? 첫번째로는 인문학에 대한 시선의 차이다.


니체도 분명 자신 이전의 철학자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아 그렇다고 물론 세이노가 극단적으로 인문학에 대해 부정하거나 무쓸모하다고 말하지는 않다. 그가 추천하는 책 중에 하나인 소유냐 존재냐는 매우 중요한 책이라는 점에서 그가 어느정도 사유하려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이러한 사상과 인문학적인 사유에 대한 의견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의 태도다.


소유냐 존재냐에서는 분명 지식에 대한 소유를 경계하면서 존재로 살아가라고 조언한다. 작가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체험? 하고 그런 면에서 좋은 책이라고 하고 있다. 근데 문제는 마치 삶을 투쟁적으로 살아오면서 자기에게 부족한 인문학적 교양을 채우기 위해서 공부한 느낌이다. 그니까 피상적인 내용으로 삶을 해석하다보니 오늘날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근대적 사유와 윤리 기타 등등은 무시해도 된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먹고 살기 바빠서 열심히 살아오다가 먹고 살만하니까 남들이 하던 공부를 못했다는 열등감으로 인해 남들 보다 더 많은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이 유형에 해당하는 느낌이다. 인문학을 많이 읽고 배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과 사상과 가치관에서는 그런 노력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 하나는 그의 삶은 매우 투쟁적이라는 사실이다.


그 투쟁에는 의미도 행복도 없다. 책 어느 부분에서도 자신의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없다. 오히려 행복을 추구하는 놈 치고 돈 많이 버는 놈 없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 말에 여전히 보이는 그의 투쟁적인 삶은 삶에 있어서 의미와 행복은 무시하고 자기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여기는 유아론적 모습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타인을 대하는 모습도 동일하다. 그는 아마 이메일로 많은 질문과 요구를 받는 듯하다. 사실상 자신이 수억대로 넘어가게 되면 아 수억대구나 라고 할 뿐이지 체감되는 것이 없기에 그와 나의 경제적 거리는 엄청 날 지라도 심리적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은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지


아무튼 그런 점에서 그는 항상 남에게 조언하고 지적하고 판단하는 위치다.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위치가 분명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소유의 관점에서는 위치가 높지만 존재의 위치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하는 어법과 형태와 모습들은 굉장히 불쾌하고 남성적이고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는 누누히 말하는 것이 자신은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말은 독자가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방법은 다르다. 물론 독자가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을 수도 있고 친절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말의 형태는 다르다. 굳이 비속어라 거친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그는 쉽게 말하고 쉽게 무시한다.


물론 불편하면 보지 않아도 된다. 그럼 그는 독자를 고려하지 않고 썼나? 만약 독자를 고려하지 않고 썼다면 블로그에 쓸 것이 아니라 일기장에 썼겠지. 아무튼 누군가 보기를 원하면서 썻다면 필연적으로 자신이 말하는 태도를 다듬어야 함은 분명하다.




4. Das ist aber schön.

- 그래도 이건 좋다 -


책 값이 싸다. 심지어 이북은 공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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