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요약 : 과학은 하나의 패러다임이다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작년에 한번 봤던 작품이기는 하지만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을 따라 기회가 될 때 한번 더 읽게 되었다. 확실히 책이라는 게 처음 볼 때랑 다시 한번 볼 때랑 다르다는 걸 확실히 느낀다.
예전에 존재와 시간을 볼 때도 일 년 텀을 두고 본 적이 있었는데, 과학혁명의 구조도 마찬가지로 일 년 뒤에 읽으니 훨씬 더 풍부하고 더 많은 것이 보이는 듯하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말 그대로 과학에 대한 혁명을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 역사학자인 랑케가 언급했던 것처럼 "인간의 정신은 그대로이나 과학은 발전한다"라는 점에서 과학은 항상 발전하고 있다.
과학이 발전한다는 것은 점진적으로 열등에서 우월로 향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토마스 쿤에게 있어서 과학은 하나의 '패러다임'이다.
패러다임은 어떤 주어진 과학자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믿음, 가치, 테크닉 등을 망라하는 총체적인 집합을 말한다.
-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중에서 - p.74
패러다임은 결국 정상 과학자들이 "아 이것은 우리가 신뢰해도 될 만한 과학이론이다."라고 믿는 하나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발전 (기술의 발전은 분명 맞다) 이기보다는 하나의 체계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그 당시 과학의 개념에 큰 틀을 흔들어 놓는 획기적인 말이다.
그 당시 과학은 논리실증주의에 따른 경험 근거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신념이 지배적이었다. 논리적 원자론에 의한 원자적 명제의 형태는 그것들이 나타내고 있는 대상을 인식해야만 이해가 가능하다고 언술 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원자적 사실에 대응하는 원자 명제들로 구성된 분자 명제로 세계에 대해 진술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는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한다.
이것은 경험론을 근거로 두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이제 토마스 쿤은 그것을 "경험론의 독단"이라는 비판을 한 콰인의 입장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패러다임이 형성되면 정상과학은 퍼즐 풀이에 힘쓰게 된다. 퍼즐 풀이는 패러다임에 해당하는 과학이 풀어야 할 '숙제'와 비슷한 것이다.
과학자 공동체가 패러다임과 함께 획득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패러다임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동안 풀이를 가진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문제들을 선정하는 기준이다.
-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중에서 - p.109
퍼즐 풀이하는 과정에서 패러다임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긴다. 토마스 쿤은 그것을 '변칙 현상'이라 부르는데 이러한 변칙 현상이 많을수록 패러다임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다가 풀이할 수 없는 퍼즐을 풀이하게 되는 새로운 이론이 나타나고 그것이 인정받게 된다면 과학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일으키게 된다.
뉴턴에 의하면 중력은 '서로의 물체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에게 와서 중력은 '공간의 왜곡'이 된다. 이것을 통해서 같은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다른 이론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뉴턴 이론이 그럴듯한 근사적 해를 제공하려면, 고려되는 물체들의 상대 속도는 빛의 속도에 비해서 훨씬 더 작아야만 한다.
뉴턴 이론은 아인슈타인 이론으로부터 유도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뉴턴 이론은 아인슈타인 이론의 특수한 경우가 된다는 것이다.
-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중에서 - p.193
특히나 빛의 에테르 이론은 그 당시에만 해도 분명한 '상식'이었다. 그것은 빛이 파동의 성질을 띄고 있으니 파동을 전달할 매개체가 필요했고 과학자들은 그 파동을 전달해 줄 에테르라는 물질이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물질을 검증하는 실험은 빈번히 실패하면서 그 물질을 입증할 것은 풀리지 않는 퍼즐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빛이 입자라는 전혀 생소한 개념이 발견되는 것이다. 과학의 위기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은 기존에 있던 과학과는 새로운 면모를 보이게 된다.
쿤은 이전의 과학과 전환된 과학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공약 불가능성'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예를 들어 칸트의 선험적 종합판단이라 불리던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다"는 뉴턴의 물리학에만 해당한다는 것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이지만 그것은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위도와 경도는 서로 수직이지만 한 점에서 만난다. 즉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 이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지구가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벗어난 상태라는 점에서, 즉 공간 왜곡이 일어난 상태에서 말이다.
이 말을 두고 본다면 과학 역시 그 당시 철학과 연관을 맺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 현대의 과학이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왔지만 언제 부서지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런 허무주의적인 생각으로 과학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현재 상식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과학적인 방법들이 모든 담론에서 인정된다는 말을 의심해야 한다. 물론 과학이 여전히 설득력이 있고 현상을 잘 설명한다는 과학적 방법을 유지하고 있지만 모든 과학적인 말들이 진리는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평점 : ★★★★ (한 번쯤은 꼭 읽어야 할 인생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