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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문철 May 18. 2019

인간은 유전자로 결정되지 않는다

스티븐 로우즈,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

스티븐 로우즈,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 

문화체육부 우수도서.. 왜 체육부?ㅋㅋㅋ


책 목차

1장 : 신우익과 낡은 결정론

2장 : 생물학적 결정론의 정치학 

3장 : 부르주아 이념과 결정론의 기원 

4장 : 불평등의 정당화

5장 : IQ, 세계의 등급질서화

6장 : 결정된 가부장제 

7장 : 정신 조정에 의한 사회 조정 

8장 : 정신분열증, 결정론들의 충돌 

9장 : 사회생물학, 총체적 종합

10장 : 새로운 생물학 대 낡은 이념 


1. 이런 거 출판하면 누가 사 보기는 하나?

이 책을 보면서 제일 궁금했던 것은 과연 "이 책을 누가 사볼까?"라는 생각이다. 물론 책의 전문성이라던가 내용의 빈약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지식 전달을 중점으로 하는 책이라서 이걸 사볼 사람이, 이것을 교양으로 읽을 사람이 있냐는 근본적인 질문으로서 든 생각이다. 


책 구성으로 본다면 이 책은 독자를 향한 배려는 사실상 찾아볼 수는 없다. 전문용어를 비롯하여 과학적 언어는 네이버 검색을 해야 할 정도로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용면에 있어서도 유전적 결정론과 사회생물학이라는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생소한 만큼 책은 읽기 힘들다. 처음 보는 것이라는 점을 봤을 때 입문하기에 좋은 책이라고는 할 수 없을 듯하다. 특히나 저자가 논증하고 결정적인 근거는 통계를 비롯하여 존재론적 주장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형이상학적인 개념도 필요할 것이다. 


뭐, 나는 빌려서 봤다고 치고 아무튼 이 책을 과연 누가 사볼 까라는 의문을 품고 책을 한 장씩 넘기게 되었다. 수많은 독서모임과 일반교양 모임에서는 이 책을 소화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 내가 소화했다는 말은 아니고 


2.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의 주요 내용

2.1.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하여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인 담론의 기본은 생물학적 결정론이라고 할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에 이어서 사회생물학적으로 유전적 결정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결정요소는 표현형으로 발현되고 모든 개체는 그 안에서 유전자의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스티븐 로우즈를 비롯한 이 책의 저자들은 그것이 정치와 연관성을 주장하면서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강한 반박을 내세운다. 특히나 제목 자체에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지만, 생물학적 결정론이 오히려 과학적으로 또한 문화적으로 허구성이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오히려 그런 허구성들이 정치적인 담론과 연계되면서 오히려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 아이러니함을 보이는 것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새로운 과학성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세기 이래로 그것은 비록 적지 않게 허구적이었지만, 문학적, 과학적 유행을 유지하고 있다.
- 스티븐 로우즈,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 중에서 - p.44


이 주장의 놀랍도록 특별한 점은 생물학적 결정론의 주장이 하나의 '정치이념'이라고 해석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치이념이 신기하게도 과학적이라는 방법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근대 기계론적 세계관의 영향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이런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한 생각이나 해볼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면 그의 주장이 확실히 참신하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로우즈가 그런 생물학저 결정론은 일종의 정치이념으로 본 것은 아마 선험적인 부분에 대해서 비판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회의 본성에 관하여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을 선험적으로 보는 것은 플라톤의 정치철학적인 맥락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결정론이 득세하게 된, 어떤 정치적 이념 속에서 결정론의 개념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부르주아'의 등장에 있다. 


부르주아 경제의 발흥을 표시하던 사회적 관계들의 급격한 재조직은 수반물로 이들 새로운 관계들에 대한 이념적 표현물의 발흥을 가져왔다. 오늘날에 지배적인 이 이념은 세워지고 있던 사회질서의 자연 세계로의 반영이었고, 새로운 질서가 항국적인 원리들로부터 따라 나오는 것으로 보이게 할 수 있었던 정당화는 정치철학이었다.
- 스티븐 로우즈,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 중에서 - p.64


자연스럽게 정치철학과 과학 담론의 결합은 유물론적 시각과 연관을 가지게 된다. 그로 인하여 과학주의적 세계관에서 객관주의는 검증 가능한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식'을 낳게 된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적인 결정은 오히려 '상식'수준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많은 담론을 수용하게 하며, 그 속에서 불평등에 대한 기원은 은폐 시킨다고 볼 수 있다. 


2.2. 사회생물학의 총체적 종합

결정적으로 스티븐 로우즈가 주장하고 있는 사회생물학은 낡은 이념에 가깝다. 사회생물학이 크게 주장하고 있는 인간 본성과, 행동의 본유성과 유전적 결정과 인간의 적응 이야기는 하나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자들은 인간이 사회적 경험을 질서화하고, 이해하고, 이야기하려는 한 방식으로 창조된 개념들을 취함으로써 그리고 세계에 작용할 수 있고 세계에 의해 작용받을 수 있는 그들 자신의 생명을 그 개념들에 부여함으로써, 고전적인 구체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 스티븐 로우즈,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 중에서 - p.293


이러한 구체화의 오류는 구체적인 대상들과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을 혼동하면서 비롯된다. 어떤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어떤 행동이나 제도가 물질적 자연의 법칙들에 복속된 실제적인 것이라고 가정할 수 없다. 사회생물학자들이 진화의 바탕에 놓여 있는 단위라고 이야기하는 많은 정신적 대상들은 특수한 문화와 시대의 추상적 창조물이다. 


사회생물학이 오류를 범하고 있는 부분이 개념적인 혼동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순수하게 사변적이게 된다. 오히려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존재론적인 환원주의로 이끌게 되면서 사회생물학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순을 보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의 중심적 단언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어떤 의미에서 유전자 안에 부호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르러 아무도 인간 행동의 어떤 측면을 어떤 특수한 유전자나 유전자 집합과 관련시킬 수 없었고, 아무도 그렇게 하는 데 대한 실험 계획을 제안하지 못했다. 따라서 인간의 사회적 특성들의 유전적 기초에 대한 모든 언명들은 그 언명들이 아무리 실증적으로 보일지라도 필연적으로 순수하게 사변적인 것이다.
- 스티븐 로우즈,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 중에서 - p.296


스티븐 로우즈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사회생물학이 일반적인 관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사회생물학에서 이야기하는 유전적 결정론에 의해서 사회는 일종의 불평등을 겪게 되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확실히 새로운 담론인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인간의 인격 특성들의 유전 가능성에 대한 연구들은 단순히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도 인간의 정신사회적 특성들의 근거에 대한 그들의 거만한 취급보다 사회생물학 저작들의 옹호 본성을 더 잘 폭로해 주지 못한다. 따라서 사회생물학의 근거는 유용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결정할 수 있다는 유전적인 결정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인간의 본성 이론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한 개인의 특성들은 예측될 수 있고, 환경에 의해 주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환경은 사회적 환경이다. 따라서 개인과 사회 사이에 변증법적 관계가 존재하고, 각각은 다른 것의 발생과 결정의 조건이 된다. 개인들이 사회를 만들기도 하고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는 이러한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이론은 생물학 이론이 아니고 사회이론이다.
- 스티븐 로우즈,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 중에서 - p.302


확실히 그런 점에서 본다면 책 제목으로 정한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는 맞는 말이 된다. 도킨스를 비롯한 유전적 결정론자들의 주장은 분명 인간 본성은 유전자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적인 주장으로 인하여 인간 본성 안에 있는 결정론적인 유전자는 없는 것이다. 


3. 과학적 대안은 되지만 전환으로서는 이루기 힘들지 않은가 

토마스 쿤에 의하면 '정상과학'의 운명은 그 과학적 가설로 인한 위기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런 위기는 퍼즐 풀이로 말미암아 과학적 세계관의 전환을 이루게 된다. 그것이 과학혁명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스티븐 로우즈의 유전학적 비결정론의 의미는 과학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아무튼 사회생물학이 풀지 못하는 퍼즐에 대하여 스티븐 로우즈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결정론이라는 부분으로서 사회생물학의 반대 의견은 충분히 용납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생물학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티븐 로우즈의 중점 논리는 '반박'에 있다. 


어떤 새로운 이론을 창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은 약점이 되는 것이다. 특히나 과학과 정치적 맥락 사이의 연관성을 다루는 것은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이 책의 주체성을 과학도서라기보다는 인문도서로 오해하게끔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과학에서 이념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드물다. 실제로 에드워드 윌슨이나 도킨스 같은 경우에는 인종주의라던가, 여성과 남성간에 찾아볼 수 있는 불평등한 기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티븐 로우즈는 그런 지점을 지적하면서 과학에서 정치적 이념에 대해 주장을 하는 것이다. 


스티븐 로우즈는 생물학적 결정론과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사회생물학에 대하여 최초로 비판을 한다. 사회생물학의 기본적인 담론에 대해 비평을 하면서 그들의 주장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가까워졌는지, 또한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룬다. 


확실히 도킨스와 윌슨의 주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지금 사회에서는 이들의 주장이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다고 본다. 과학 도서에서 베스트셀러를 놓치지 않고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중에 도킨스와 윌슨은 꼭 들어가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주목을 받지 않고 있다. 


물론 도킨스와 윌슨의 주장이 더욱 합리적으로 또한 정상과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스티븐 로우즈의 주장대로 그런 개념들이 얼마나 자본주의 논리와 적합한지를 판단한다면 책의 설득력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줄요약 : 이거 첨 볼 때는 진짜 생소하다




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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