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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문철 Jan 10. 2019

"노예12년", 솔로몬 노섭

한줄요약 : 너나 나나 그냥 노예가 아닐까....

솔로몬 노섭, 노예 12년


영화로도 소개되어 있는 노예 12년은 솔로몬 노섭이 돈을 더 벌기 위해 워싱턴으로 가다가 노예로 팔려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노예 생활을 경험하면서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보여주게 된다.

솔로몬 노섭, "노예 12년", (펭귄클래식, 2016)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오로지 주어진 것은 '노동'뿐이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노동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여기서 '노동'의 의미와 전적으로 다르다. 전혀 자신의 의지가 없고, 생활이 없고, 의미가 없다. 하나의 기계 부품으로 받아들여지는 노예는 사람이지만 전혀 사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다.


솔로몬 노섭은 자유인으로서 살아보기도 하고 노예인으로서 살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노예로 살아가는 의미가 얼마나 존재론적으로 엄청난 억압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도 잘 보여준다. 노예의 삶을 잘 그려내 주는 부분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도 부여할 수 없는 상황은 그야말로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버겁다.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이렇게 버거움을 주는데 그 당시 겪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어두운 시대였을지 짐작한다면 이 책을 읽을 때 '만들어진 드라마'처럼 볼 수가 없게 된다. 눈을 뜨기도 전에 일을 시작해야 하고 중간에 쉬는 시간 없이 계속 굴러가야 하는 톱니바퀴처럼 여겨지는 존재를 들여다볼 때 도대체 저 삶의 무엇이 의미가 있는가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매일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라고는 고작 폭 30센티미터, 길이 3미터짜리 널빤지 하나가 전부였다."
- 솔로몬 노섭, 유수아, "노예 12년", (서울:펭귄클래식코리아, 2016), p.289 -


우리는 이미 '자유'의 소중함을 아는 세대이기 때문에 자유를 위해서 왜 투쟁해야 하는가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말 그대로 이미 자유를 행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은 세대이기 때문에 천부적으로 주어진 것에 대해서 왜 투쟁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나에게 이미 주어진 것을 내가 왜 뺏겨야 하며, 내가 그것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 누구와 투쟁을 해야 하는가라는 점에서 자유에 대한 투쟁을 가늠할 수 있다. 이 마저도 가늠하게 하는 것이지 완벽한 이해를 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역사적으로 자유를 억압받고 뺏겨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자유를 위해 투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이다.


노예 12년을 보면 볼수록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떠오른다. 자신의 실존이 억압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실존을 지키는 것은 다름 아닌 '삶의 의미'이다. 노섭이 억울하게 자신이 노예가 된 상황에서 그것을 12년 동안 참고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조금씩 돈을 모아서 '바이올린'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그 사람의 삶에서 근본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지 본능적인 욕구를 2차적으로 합리화시키기 위해 생기는 것은 아니다."
- 빅터 프랭클, 이시형,  "죽음의 수용소에서", (서울:청아출판사, 2016), p.168 -


빅터 프랭클이 말하는 삶의 의미는 자기 방어적인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요구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솔로몬 노섭은 노예의 생활을 그냥 지내고 순간에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에 불안을 대상화한 것이 아니라 바이올린이라는 삶의 의미를 추구했기 때문에 삶의 불안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서 "회사의 노예"가 된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분명히 현대 사회에서 노예의 이야기를 볼 때 계급적 차원에서는 해방되었지만 스스로의 노동이 자신에게 돌아가지 않고 소외되는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자신의 실존이 해방되지 않고, 존재론적으로 발현될 수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이 책은 '나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질문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질문에 답을 하길 원한다. "죽지 못해 삽니다"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나오는 사회에서, 특히나 노예가 아닌 사람들이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우리의 의미를 찾기를 희망해야 한다.


노예 12년을 볼 때 그들의 삶이 "톱니바퀴"처럼 느껴지고 그저 소모되는 사용품으로 해석되는 것이 마음이 아픈 것은 단순히 예전에는 이런 삶을 살았구나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부품으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점 : ★★★ (그냥저냥한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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