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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문철 Feb 26. 2020

종교인만 종교적 삶을 이해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종교적 삶의 현상학" 

마르틴 하이데거, 종교적 삶의 현상학

앗...자라나라 머리머리...


이 책을 읽으려고 수도 없이 노력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18년도부터 읽다가 반납하고 읽어보다가 반납하고를 반복했는데 그래도 2년간의 성장이 있었는지 20년도에는 읽을 수 있게 되어 완독했다.


그런데 읽을수록 하이데거의 대단함에 놀라고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 철학적 해석에 대해서도 새롭게 찾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종교적 삶의 현상학을 드러내고 있다. 말의 뒷부분처럼 논리의 전개 과정은 현상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고 실존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신천지의 활동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종교적 활동에 우려를 많이 표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종교현상을 사회학적인 방법론으로 해석한다면 회의적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종교에 대한 고찰은 현상학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앞 부분도 종교현상학을 입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트뢸치로 인하여 종교 간의 다양성과 그로 인한 진리 개념의 갈등 상황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그 말은 결국 진리 개념이 향하는 절대성은 상대적인 것은 분명하나. 그 안에 내재된 진리성에 대한 의미는 여전히 각 종교나 진리 개념이 절대성으로 향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제 하이데거는 현상학을 넘어서 기술하는데 그 부분이 바로 현사실성이라는 측면이다. 현사실적 삶의 경험은 현상학이 고찰하는 "그 자체"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종교적 삶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그 이후에 전개된 종교적 현상에 있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현사실성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것은 근본 현상이 현사실적 삶의 경험이며 그것은 현상에 있어서 존재의 근본적인 의미를 묻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 현상이 왜 그리스도교에서 잘 기술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적 삶에는 안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고찰을 이끌어 낸다.


이런 지점을 본다면 신학적으로 갈라디아서를 해석하는 신학자들의 작업과는 상당히 길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신학적 작업은 성서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와 그것이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한 은혜를 의미한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여기서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 그리고 바울이 선포하는 메시아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현상을 집중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적 종교성은 현사실적 삶의 경험에 있으며 그것 자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가 죽은 이후 이 시대에도 그리스도교는 그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종교인만이 종교적 삶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에서 나오는 종말론적 이해가 필연적으로 현존재의 "눈 앞에 있음(Vorhandenheit)"에 대해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사유 활동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다가옴으로 설명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종교적 삶과 더 나아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해석하는 것까지 나아간다. 그 이유는 바울서신을 통한 종교적 삶과 고백록에 나오는 현사실성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유명한 역사 이해와 시간 이해를 통해서 하이데거는 "삶을 찾음"에 대해 사유하고자 한다.


철저하게 삶과 연관하여 전개하는 하이데거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교리적이고 객관화된 학문 속에서 가 아니라 삶의 체험에서 실존적 경험이 나온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적인 삶이 근본적으로 생생한 체험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삶의 경험 속에서 시간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분석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단순히 한번 읽고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책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성서를 해석하는 그의 노력이 신학적인 영향도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는 비판점은 성서를 해석하는 것에 있어서 지나친 의미론적인 해석은 성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순히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 해석하게 된다는 오류를 낳기도 한다. 물론 하이데거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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