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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문철 Feb 28. 2020

하룻밤에 다 못 읽는 한국역사 입문 책

최용범, 이우형, "하룻밤에 읽는 한국 근현대사" 

최용범/이우형, 하룻밤에 읽는 한국 근현대사 


교회 역사는 알아도 한국 역사는 모르는 무뇌한이 역사를 알고자 읽게 되었다. 사실 한국 역사도 관심이 덜하고 한국 교회 역사도 덜했는데 이번 기회에 관심을 가지고자 노력했다.


한국 역사를 관심가지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기가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고 언제나 이념 대립에 머물러 있기에 애초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치와 역사는 언제나 연관이 있기에 정치적 대립을 관심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덜 두게 되는거 같다.


그런 점에서 이번 책은 역사적인 맥락을 잘 짚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정치적 견해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는 점은 각자의 몫이라 본다. 


이 책을 통해서 본 한국 역사는 혹시나가 역시나다. 언젠가 유럽과 한국의 같은 시대 다른 환경을 본적이 있다. 유럽은 근대화 과정을 거쳤는데 한국은 여전히 초가집에서 살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겠지


그런데 역사를 돌아보니 사실 그 속에서는 강대국끼리의 강탈 속에서 한국은 언제나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약자였다는 것이다. 


독립도 자주적이지 못하고, 전쟁도 자주적이지 못한 면이 분명히 있다. 정부를 수립하는 것에 있어서도 '자주적'이다 라는 표현이 무색한 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통일 문제나 국가문제에 있어서 독일과 비교하게 된다. 독일은 통일을 이루거나 전범국가로서 책임을 질 때 그것을 인정하는 모습을 익히 알 수 있다.


그 나라가 자주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가 직접 저지른 일이며 그 주제가 자주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해자가 아무리 자신의 피해를 말해도 그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자주적인 행위를 한 쪽에서는 주체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된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는 피해국가의 입장에서 문제에 대한 책임과 사과와 해결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독도 문제나 위안부와 같은 문제에 있어서 말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 부분에 있어서 강자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자주성을 인정하지 않는 다는 태도에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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