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상상하며
사회화를 통해 적당히 묻어갈 수 있는 인간으로 나를 맞추어놨지만
마음 한 켠에는 평행세계에서라도 내가 온전한 나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남아 있다.
내가 나 자체로 사는 삶은 어땠을까.
누구의 기대를 먼저 읽지 않고, 내 감정의 크기를 사회적으로 무난한 사이즈로 눌러 놓지 않는 삶.
다른 세계의 나는 그런 곳에 살았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아침은 조급하지 않다. 눈을 뜨면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보다 오늘의 날씨는 어떤 색깔인지 먼저 궁금해진다. 나는 그걸 메모한다. 거창한 영감이 아니라, 살아있는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곳에서 나는 아티스트로 산다. 하지만 아티스트처럼 보이기 위해 살지는 않는다.
작품을 통해 나를 증명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만들어낸다.
어떤 날은 선으로, 어떤 날은 문장으로 어떤 날은 색으로.
감정이 올라오면 억누르지 않고 재료로 쓴다. 기쁨이 와도 ‘너무 들뜨면 안 돼’ 하고 누르지 않는다.
여기서는 감정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감정은 작품이 된다.
거리에서 스치는 장면들이 내게는 계속 신호를 보내고 나는 그걸 붙잡아 기록한다.
이 세상은 내 감수성을 과잉으로 취급하지 않으니까, 나도 나를 과잉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작업실은 크지 않지만 내게는 충분하다. 벽에는 실패들이 붙어 있다.
종이가 구겨진 흔적과 번진 물감, 어제는 좋아서 끌어안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보니 낯선 문장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간밤의 생각이 조금은 부끄럽지만 웃어넘긴다. 실력의 결함이 아니라 과정의 증거로 받아들인다.
완벽해지기 위해 작업하지 않는다.
납득을 얻기 위해 내 표현을 타협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기가 쉬워진다.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내가 허용되는 환경이니까.
이곳에서 나는 나라는 사람 자체가 자랑스럽다. 성과로 자랑스러운 게 아니다.
남들이 알아봐서 자랑스러운 게 아니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 방식이 좋다.
내가 느끼는 방식이 좋다. 내가 세상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표현으로 바꾸는 방식이 좋다.
다른 세계의 나는 더 자유롭고, 더 예민하고, 더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현실의 나는 끝내 증명하며 살겠지만 적어도 다른 세계의 나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길 바란다. 나는 그 응원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