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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Oct 11. 2020

카페에서 컵을 깬 날

    바다가 보이는 작은 카페 안에 몇 명의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 책을 읽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중이었고, 대화는 없었다. 조용하다 못해 마음이 가라앉을 듯 고요한 공간. 거길 채우는 건 잔잔한 연주곡뿐이었다. 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한라봉 에이드, 녹차 마들렌을 주문했다. 편안한 자리에서 맞는 나른한 오후. 휴대전화로 방탈출 게임이나 하자며 나란히 앉은 우리.


    아늑한 평온은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박살 났다. 사람들은 놀라 우리를 쳐다보고, 한라봉 알갱이들은 팔과 무릎 위에 덕지덕지 붙었다. 끈적임. 날 선 유리 조각의 아슬함.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 베인 손가락에 맺힌 참깨만 한 핏방울. 우린 컵을 깼고, 카페 안의 고요도 같이 깼다. 너무 놀라 무릎이 달달 떨렸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침착한 사람은 카페 사장님뿐이었다.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나타난 사장님은 우리의 안녕을 물은 뒤 깨끗한 자리에 가서 기다려 달라, 그러면 새 음료를 가져다 드리겠다 했다. 아니, 어떻게 그래요. 저희 잘못인데요. 사장님 손에서 빗자루 뺏어 들고 치우려고 했지만 사장님은 차분히 웃으며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할 뿐이었다.


    " 변상하고 싶어요. 죄송해요, 정말..."
    "아이고, 아니에요. 괜찮아요."


    우리는 사장님과 함께 바닥과 테이블을 닦았다. 변상은 음료를 한 잔 더 계산하는 걸로 졌다. 식은땀은 증발했고 핏방울도 잘 닦였고 어수선했던 카페도 다시 평온해졌다. 하지만 몸에 붙은 한라봉 알갱이는 닦아도 닦아도 계속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거기에 붙게 되었는지, 종아리에서도 발가락 사이에서도 뺨과 목덜미에서도 알갱이를 떼어냈다. 온몸이 끈적였다. 그건 꼭 내 마음 같았다.


    나는 그렇게 살았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해,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되도록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해. 이런 삶의 태도는 거의 강박적인 것이었다. 때문에 폐를 끼치게 된 상황 속에서 난 언제나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이건 건강한 삶이 아니라는 것과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는 관대하지 못했다. 결혼을 한 후에는 남편에게까지 이런 태도를 가지길 요구했다. 감정이 상해 싸우게 되더라도, 절대로 거리에서 눈을 흘기거나 목소리를 크게 내면 안 . 그건 기분이 좋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화도 소곤소곤,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누군가와 부딪치지 않게 조심조심.



    "머리카락에도 알갱이 붙었다."


    남편은 집게손가락으로  머리카락에 붙은 알갱이들을 떼주 말했다.


    "괜찮아.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때도 있는 거야."


     난 그제야 마음이 조금 풀렸다.


    사람들 시선을 그토록 무서워했나에게 건넨 남편의 다정한 한마디는 꼭, 진리 같았다. 잘 알고 있는 인데도 어느 날 불현듯 한 글자 한 글자가 빛처럼 다가오는 진리의 문구. 해방의 선언. 맞아,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카페에서 컵을 깰 수도 있고.


    밖으로 나와 마을 수돗가에서 샌들을 벗고 발가락을 닦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그때까지도 내 몸엔 작은 알갱이들이 여기저기 숨어 붙어있었지만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때도 있는 법이지, 마음에 붙어있던 끈적한 알갱이들이 스르르 미끄러진 것 같다. 괜찮아, 안 다쳤으니 다행이야, 달달 떨렸던 무릎에 다시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 아, 그러니 내가 오늘 적을 말은 이것이다. 혹시 나 같은 분이 계시다면,


    기억해주시길.

    괜찮아요,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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