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비극이고, 그대는 내가 아니며, 추억은 다르게 적히지. 어떻게 이런 가사를 썼을까.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늘 감탄하며 듣는 건 그녀가 적은 가사와 목소리에 담은 그녀의 지난 사랑 때문이었고, 그 사랑에 공감하기보다는 사랑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와 감수성 때문이었다. 도대체 그녀 속에는 무엇이 담긴 것일까, 그녀는 어떤 사랑을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언제나처럼 노래에 갇혀버렸다.
ⓒAnn Savchenko on unsplash
제주도의 여름은 춘천의 여름보다 길고 진했다. 새파란 하늘과 세상을 녹일 듯이 떨어지는 볕에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섬을 자주 차로 달렸다. 목적지 없이, 내비게이션의 친절한 목소리 없이. 지도를 보며 길을 이어가다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 다다르기를 좋아했다. 드넓은 초원이나 삼나무 숲 같은 곳. 조용한 바닷가 마을, 차분한 귤밭, 가만한 등대. 그러나 그 모든 곳에는 여름이 있었고 서로가 있었다.
서로에게 기댔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거의 대부분 기대는 쪽은 나였다. 골목에서 뱀을 만났을 때도, 무거운 짐을 들고 숙소로 돌아갈 때도, 발이 땅에 닿지 않은 깊은 바닷물 속에서도 나는 그에게 기댔다. 엄청난 태풍이 불던 날 밤, 생리통 때문에 아파하는 나를 위해 비를 뚫고 약국에 다녀온 것도 그였다. 뒤집어져 고장 난 우산을 들고 숙소로 돌아온 그는 다 젖은 채로 웃으며, 비가 엄청 따갑더라고, 했었다.
그랬기에 나의 제주도는 늦여름이었고, 그였다.
그가 찍은 사진 속 나는 카메라 렌즈 대신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고, 그는 나에게 자기 말고 카메라를 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그 소리가 또 듣고 싶어 두 번째 사진도 렌즈 대신 그의 눈을 바라보곤 했다. 사진은 건질 게 없었지만 그의 표정은 건졌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내가 찍는 그의 사진은 대부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작은 게를 잡는 모습이나 운전하는 모습,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이나 산을 오르는 뒷모습. 맛있는 걸 잘 먹고 있는 모습이나 책을 읽고 있는 모습. 그는 내가 찍은 사진 속 자기 모습을 부끄러워했다. 나는 그 표정도 기억에 담아두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은 그의 부끄러운 표정이었고, 그였다.
ⓒAnn Savchenko on unsplash
우리는 제주도에서 여름을 지냈고 사랑을 했다. 가수의 감수성으로 우리의 사랑을 적진 못했으나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서로를 담았다. 그대는 내가 아니고, 추억은 다르게 적혔을지도 모르지만, 나의 사랑은 비극이 아니라 늦여름이었다. 늦여름의 제주도였고,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