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미림 Oct 07. 2020

아끼는 동생이 돌아가고

   제주도에서는 장례식 조문객들에게 세탁 세제나 비누 같은 것으로 답례를 다고 한다. 제주도 장례식에 가 본 적이 없어 요즘도 그러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2016년에 개봉한 영화에 나오는 얘기니 아마 지금도 그렇게 하 않을까 싶다. 어쨌든 옷을 빨거나 몸을 닦는데 쓰는 것으로 조문객들에게 답례를 하는 건 듣는 것만으로도 낯설고 신기한 모습이었다. 혹시라도 조문객들에게 해악이 묻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싹 다 씻어버리라는 배려의 표현. 만약에 제주도 장례식에 갔다가 답례품으로 세제를 받는다면, 부산 결혼식에서 답례로 차비 봉투를 건네받았을 때와 같은 기분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경하지만, 분명 고마운 마음 들 것이다.



    아끼는 동생이 오랫동안 아팠다. 두통이 심해서 병원에 갔는데, 그건 종양 때문이라고 했다. 그 뒤로 그 애는 조금씩 천천히 졌다. 싱그러웠던 장미가 선명한 색을 잃고 그 화형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초록색 나무의 계절이 서서히 겨울로 옮겨가는 것처럼. 피아노를 치던 고운 손은 무릎 위에 가만하게 얹혀만 있었고, 큰 눈의 초점은 흐려졌다. 말이 사라졌다. 생각이 그쳤고 걸음이 멈췄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동생이 소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애 때문이 아니라 그 애 어머니 때문에 많이 슬펐다. 어린 딸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마음은 감히 헤아려볼 수도 없었기에, 나는 어머니 앞에서 횡설수설하다가 이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장례식에 다녀온 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번화가에 나갔다. 자정가까운 밤인데도 청년들이 제법 많았고, 그들 틈에서 나는 야구 배트를 쳤다. 그날따라 공이 잘 맞았다. 초등학생 때 해보고 한 번도 안 해본 두더지 게임도 했다. 허튼 데다가 정신을 쏟아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건 꼭 제주도 장례식에서 나누어주는 세탁 세제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해악이라고 여기는 마음은 결코 아니었지만, 아끼는 동생의 죽음과 남은 가족들의 슬픔을 잠깐이라도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은 맞았다. 그러나 애통은 씻기지 않았다.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거리에는 어둠만 깔린 게 아니었다. 그 애를 살려달라고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나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않고 땅에 흩어져 내렸다. 그래, 그 거리엔 나의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 있었다.


    으로 돌아와 몸을 씻고 누어머니 앞에 꼭 다물려 있던 입을  나도 모르게 노래를 불렀다. 그럼에도 하늘나라 그 어디나 하늘나라. 어쩌면 나의 오랜 기도는 흩어져 내림으로 땅 위에 심긴 것일지도 모른다. 노래가 터져 나온 후부터 나에겐 더 이상 정신을 쏟아낼 허튼 데나 죽음을 씻어낼 비누 같은 건 필요 없어졌다. 나는 그 깊은 밤, 죽음을 털어버리지 땅에 심긴 것이 꽃을 피울 때까지 가만히 간직하리라, 조용한 노래를 끊임 없이 부르리라 마음먹었다.





















작가의 이전글 안 해본 걸 해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