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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Oct 02. 2020

안 해본 걸 해보기

    안 해본 걸 해보기 위해서는 용기와 부지런함과 돈이 필요하다. 어느 경우에는 이 세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기도  하고, 또 다른 경우에는 세 가지 중 두 개만, 어쩌면 한 개만 필요할 수 도 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나는 내 의지로는 결코 하지 않을 일을 찾아 해 보기로 했는데, 그 일을 위해서는 세 가지 모두가 필요했다.



1. 용기

    낯을 잘 가리는 나에게 소모임 안에서 밀접하게 소통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낯선 사람 앞에서 나의 약점을 드러내고 고쳐내야 하는 일에 큰 용기가 필요했고. 가끔씩 밀려오는 민망함을 모른 척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딱 붙는 옷은 진작에 포기했지만, 자세라던가 내 몸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어 무너질 때는... 나도 어쩔 수 없었다.


2. 부지런함

    일주일에 두세 번, 아침 9시 혹은 10시. 숙소에서 약속 장소까지는 차로 사십 분이 걸렸다. 그리 이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우리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우리는 매일 새벽 세네 시쯤에 잠들었다. 깊은 밤의 아늑함을 포기할 수 없었다. 때문에 약속이 있는 아침이면 비몽사몽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곤 했지만, 어쨌든 늦었던 날은 없었다!


3. 돈

    열 번의 약속, 하루 한 시간의 만남.

    그리고 25만 원씩 두 사람, 50만 원.



    우리가 안 해본 일, 그러나 제주도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도전한 일은 '필라테스'였다. 자전거 타기나 달리기 같은 동적이고 개인적인 운동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필라테스를 배우는 건 분명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굳이 오전반을 선택한 것은 게으름을 이겨내고 부지런해 보자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우리에게 오십만 원은 거금이 맞았다.


    필라테스 말고도 제주도에서 해 본 안 해봤던 일들은 돈가스 맛집 앞에서 밤새 기다리기(용기와 부지런함), 말 타고 숲길 다니기(용기와 돈), 바다 다이빙(용기, 용기, 용기), 라탄 바구니 만들기(부지런함과 돈), 인적 드문 오름 오르기(용기와 부지런함), 고등어회 먹기(용기와 부지런함과 돈) 등이 있었고, 그 일들을 하나하나 해 보면서 우리는 매 순간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기분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건 생각보다 제법 괜찮은 기분이었고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내가 정한 경계선 안에서 확인된 안정을 누리는 것보단 분명 매력적인 일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새로운 일들을 해 봄으로써 나의 부캐가 늘어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냥 내가 더 넓어지기를 바랐다. 용기를 내고 부지런을 떨고 돈을 씀으로써 더 경험하고 더 실패하고 더 깨닫기를 바랐다. '이른 아침 필라테스 하는 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침 운동의 상쾌함이 무엇인지, 새로운 사람을 대하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려운 자세를 버티고 무너지고 다시 도전하는 정신은 무엇인지를 배우고 싶었다. 그것으로 내가 더 깊어지기를 바랐다.


    제주도에서 안 해본 걸 해보는, 그 사소하고 황홀한 일들은 부캐를 만들어주는 것 대신 내가 바랐던 대로 나의 경계 넓혀 주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여러 개의 부캐 말고 하나의 삶과 말과 정신으로, 결국엔 '나'로 살고 싶다. 책임을 지고 후회를 하며, 도전을 하고 무너져 내리며, 사랑을 하고 기도를 하며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지. 그것을 위해 계속 새로운 일을 해야지. 그렇게 나를 넓혀 가야지, 이곳 제주도에서도.


ⓒjaemin don on unsplash






















지난여름, 제주도에서의 한 달을 기록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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