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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Mar 16. 2020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아아,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그 느낌은 고통스럽게 왔다. 전신이 마비됐던 환자가 어떤 신비한 자극에 의해 감각이 되돌아오는 일이 있다면, 필시 이렇게 고통스럽게 돌아오리라. 그리고 이렇게 환희롭게. 나는 내 부끄러움의 통증을 감수했고, 자랑을 느꼈다. 나는 마치 내 내부에 불이 켜진 듯이 온몸이 붉게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_<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박완서






    세상에서 부끄러움이 사라진다면.


    부끄러움이 없어진 세상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을지도 몰라,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건 체면을 중시해서도 아니고, 자존심이나 열등감 때문도 아니었다. 잘못한 일을 잘못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는 것. 양심이란 게 아직 남아있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만연한 세상. 그건 바로 부끄러움이 사라진 세상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세상은 분명 아름다울 리 없다.


    한동안 나는 부끄러움을 오해했다. 한껏 꾸미고 나왔건만, 지금 내 꼴이 유행에 뒤쳐지는 촌스러운 모양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나 몸치임에도 불구하고 춤을 춰야 하는 상황에서, 꼭 그런 상황에서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만이 부끄러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굽히지 않는 자존심이나, 그런 자존심에서 나오는 도도한 언행에는 오히려 자긍심을 느꼈다. 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일에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자의로든 타의로든, 나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면서 무엇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느껴야 할 부끄러움은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환희롭고, 또 때로는 아프지만 자랑스러운 감정이어야 했다. 그건 오래된 책에서나 어른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감정, 가난이 아니라 사랑 없음에서 느껴야 하는 감정이었다. 나는 꼭 그런 부끄러움을 배워야 했다.


    더 이상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까무러뜨리거나,

    곧게 내세워야 할 것을 뒤로 버려두지 않기 위해서.

    바른 사고를 포기하거나,

    사랑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꼭 부끄러움을 배워야 했다.






나는 각종 학원의 아크릴 간판의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러덩펄러덩 휠휠 휘날리고 싶다. 아니, 굳이 깃발이 아니라도 좋다. 조그만 손수건이라도 팔랑팔랑 날려야 할 것 같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고. 아아, 꼭 그래야 할 것 같다.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_<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박완서


ⓒeluoec,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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