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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May 04. 2020

칠러를 마시며

    에어컨을 틀어도 자동차 안은 바로 시원해지지 않았다. 햇볕에 달아오른 내부 온도는 은근한 짜증을 일으키고, 아직 5월이라는 사실은 가벼운 절망을 부른다. 아, 벌써 덥네. 우리는 날씨를 핑계 삼아 맥도날드로 차를 돌렸다.


    "배 칠러 하나랑 원두커피 하나 주세요."


    이토록 편한 드라이브 쓰루라니. 우리는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창문 밖으로 머리만 빼꼼히 내밀고 음료 두 잔을 주문을 했다. 평소 같으면 칠러 같이 이가 시린 음료 생각은 안 날 텐데, 더운 날씨를(혹은 우리 앞에 세워진 커다란 광고판을) 못 이기고 배 칠러를 주문한 것이다.


    "와, 이거 그거 맛이다."

    "뭐?"

    "탱크보이."


    주문한 칠러 받아 들고 한 입 쭉 빨아먹으니 어린 시절에 학교 문방구에서 사 먹던 슬러시 생각이 났다. 작은 컵은 삼백 원, 길쭉한 컵은 오백 원이었나. 아무튼 웅웅 거리며 휘황찬란하게 돌아가는 기계와 그 속의 두 가지 맛 슬러시는 조그만 아이들에겐 엄청난 유혹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탄산음료에 물을 섞어 만들었는지, 삼백 원 주고 손에 쥔 슬러시 맛은 싱겁고 밍밍했었다.


    "어, 맞다. 탱크보이 맛이다."


    어릴 때 먹던 밍밍한 슬러시에 비하면 배 칠러는 엄청 진했다. 삼백 원에서 이천 원이 되었고, 이름마저도 슬러시에서 칠러로 엄청 세련돼지지 않았는가. 이렇게나 고급져버린 배 칠러는 탱크보이 맛이었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된 것이다. 배 칠러는 배 맛이 아니라 탱크보이 맛이고, 딸기주스는 딸기 맛이라기보다는 딸기에 달콤한 연유를 잔뜩 섞은 맛이 되었다. 옥수수 빵은 과하게 꼬수운 맛이 되어버렸고, 김은 김 맛이 아니라 조미료 맛이 됐다. 아아, 자두 사탕은 진짜 자두 맛을 까먹게 만들지 않았던가.


    내가 어릴 땐 밍밍한 슬러시도 많이 마셨지만, 검은 봉지 채 뒷베란다에 두었던 시장 과일도 참 많이 먹었었다. 엄마와 시장에 가서 보면 한 근에 천 원, 알이 굵은 건 천오백 원 하던 딸기가 수북이 쌓여있었고, 그 옆엔 푸릇푸릇한 나물들이 놓여있었다. 여름이면 종이컵 한 컵에 오백 원 하던 앵두도 자주 사 먹었었다. 나는 그 맛이 좋았다. 단맛보다는 신맛이, 과육보단 단단한 씨앗이 컸지만 알알이마다 곱게 담긴 여름의 더운내가 좋았다. 가족들과 둘러앉아 작은 숟가락으로 파먹던 알밤, 그 연한 달짝지근함 좋았다.


    "여보, 근데 이거 배 맛은 아니다."


    나에게 배 칠러를 마시며 배 맛을 떠올릴 수가 없는 건 슬픈 일이었다. 가짜가 진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 같았고, 나중엔 뭐가 진짜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진리가 거짓으로 대체되어 버릴까 봐 두려워진 것이다. 나는 컵홀더에 칠러를 꽂아두고 다시 마시지 않았다. 운전하는 동안 차 안은 시원해져 칠러는 더이상 필요치 않았다. 바깥은 해가 기울어 그 빛이 진해지고 있었다. 기울어 진해진 햇빛은 나무를 더욱 나무답게, 하늘을 더욱 하늘답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예쁜 봄아, 좀 더 오래 머물러주라. 모든 진짜를 더욱 진짜답게 비춰주는 봄볕에 괜히 마음이 애달다.


    그날 밤, 늦은 저녁밥을 먹고 전에 친구가 사 왔던 배를 후식으로 먹었다. 물을 질질 흘리며 껍질을 까는 게 영 귀찮지만, 어쩔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반갑다. 칠러처럼 세련되지 못해도, 드라이브 쓰루처럼 편하지 못해도. 이건 탱크보이 맛이 아니라 배 맛이기 때문에.


    앞으로 칠러는 마시지 말아야겠다.


ⓒSOCIAL.CUT,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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