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글들을 그러모을 땐 낯은 뜨거워졌고 속에선 부끄러움이 일었다. 글을 쓸 당시만 해도 브런치에 올려도 괜찮아 보이던 글들이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이것은 새벽 감성인가 아니면 철없는 자기 고백인가 싶다. 어쩌면 글 쓴다는 것에 대한 자기만족인지도 모른다. 브런치에서 읽은 수많은 좋은 글들과 그 글들을 쓴 작가들의 손가락을 부러워하며 수없이 한탄을 하고 연습을 했음에도, 나는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진지한 생각이 없으니 글의 깊이가 얕고, 삶의 태도가 어정쩡하니 글의 힘도 약한 것이다.
어떤 글은 작가와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음에도 꼭 작가를 실제로 만난 것처럼 살갑고, 그의 삶과 생각을 닮고 싶게 만든다. 또 어떤 글은 내 속에 욕심과 선망의 마음을 심어주기도 하며 삶을 더 나은데로, 그렇게 글이 이끄는 데로 따르게 만들기도 한다. 아마도 그런 글들에는 작가의 진심이 담겨있을 것이다. 글의 힘은 삶의 힘에서 나오고, 다른 이의 삶을 더 나은 데로 이끌어 준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철저하게 글을 쓰고 싶다. 내 글이 내 삶의 반영인 것을 믿으며, 더 철저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런 생각이 짙어지는 건 요즈음 내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못해서 일 것이다. 사랑과 용서에 대하여 글을 쓰면서 정작 내 삶엔 사랑과 용서가 흔치 않기 때문이고, 작고 약한 것들을 위해 손해를 보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내 마음에는 늘 싸움이 있다.
언제쯤이면 이 싸움이 쉬워질까.
언제쯤이면 자연스럽게 꽤 괜찮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강이 보이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오래된 아파트다. 두 사람이 살기엔 너무 컸던 군인 관사에서 나와 작고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한 뒤로 마음이 편하다. 몸집이 작은 소라게가 자기 몸에 맞지 않던 큰 소라 껍데기를 끌고 다니다가 드디어 그 무거운 노동에서 벗어난 것처럼. 가구가 적어 헐렁했던 거실과 비어있던 방 하나에 느끼던 괜한 부담감으로부터의 자유.
위대한 글을 쓸 재량이 없다. 지금 나는 그저 내 몸에 맞는 글, 내 삶에 맞는 글을. 그래서 작은 글을 쓸 때다. 그러나 진심을 쓰고 싶다. 내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을. 작고 작아서 자세히 보아야 하는 글일지라도, 싸움의 흔적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보아도 괜찮을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