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미림 Aug 26. 2020

돌담은 무너지지 않더라

    튀니스에서 카이르완까지 가는 길은 황량했다. 거칠고 쓸쓸한 흙색 땅, 그 위에 난 길을 차로 달리는 동안의 하품 몇 번, 지루함. 나는 스르르 선잠에 들었다.


    잠에서 깼을 땐 여전히 흙색 땅 위였지만, 그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새콤한 딸기 냄새가 온 땅에 진동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보니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모를 과일 장수가 딸기를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튀니지 딸기는 향은 무진장 좋지만 그 맛은 한국 딸기 십 분 일도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으면서도, 나는 딸기를 두 봉지나 샀다. 검은 봉지에서 어 나오는 새콤한 딸기 냄새를 맡으면 카이르완까지 가는 길이 좀 수월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딸기 냄새는 차 안에서의 시간을 한결 나아지게 했다. 호텔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저 딸기를 씻어 먹어야지, 라고 생각하면 입안에 침이 고였다.


    그렇게 딸기 냄새에 취해있다가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흙색 땅은 회녹색 나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그건 그냥 회녹색이 아니라 녹색 이파리 위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윤슬이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 황홀했다. 저 나무들은 올리브나무. 나는 코로는 딸기 냄새를, 눈으로는 올리브 냄새를 맡았다. 끝없이 펼쳐지는 회녹색마음에 담았다. 그때부터 나는 올리브나무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Stacey Zinoveva on unsplash


    어쩌면 올리브나무의 황홀한 빛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지는 올리브 밭의 착실 사랑하게 된 것일 다. 이런 류의 사랑은 튀니지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스무 살에 인도를 여행할 때도 나는 그곳의 착실 사랑에 빠졌다. 바라나시행 기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이 바로 그것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지평선, 그 광활한  위에 앉은 생명들. 름한 집들 그 속 사람들, 떠돌이 개들, 소들, 다시 이어지는 초원. 그 풍경은 단조로웠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나는 역에서 산 망고를 손으로 주물러 먹으면서도 눈을 창에서 떼지 못했.


    스리랑카의 어느 산마을을 여행할 때에도 그랬다. 회백색 구름은 내가 여행하고 있던 마을을 삼켰다가 뱉어내기를 여러 번 했었는데, 구름이 마을을 삼킬 때면 나는 가만히 서서 작고 차가운 물방울들을 온몸으로 맞 했다. 물방울들은 내 발가락 사이를 드나들었고 머리카락을 적셨다. 렇게 한참을 서 있다가 슬으슬한 구름 속에서 나오면 밭에서 잎을 따는 사람들의 여전한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 그 사람들은 구름 속이든 구름 밖이든 신경 쓰지 않고 제나처럼 찻잎을 따고 있었으리라. 나는 그 모습을 보 참 착실하 생각다.


ⓒkangbch on pixbay


    태풍이 분다.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건 뒤숭숭한 일이었다. 태풍에 쓰러진 나무와 가로등, 떨어져 나간 간판거친 파도사진들 스로 보 더욱 그랬다. 좋아하는 고구마를 삶아 먹어도 입맛이 없다. 나는 다시 거실로 나가 두 무릎을 감싸 안고 창가에 앉았다. 퍼붓던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여전히 세서 야자수들을 흔든다. 풀들은 아예 벌러덩 누웠다. 하지만 돌담은 꿋꿋했다. 나는 대충 쌓아 올린 것 같은 돌담을 툭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질 것이라 생각했었다. 바람 많은 제주도에 돌담이 웬 말이냐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숙소 앞, 창문으로 건너보는 돌담은 거친 비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있었다. 아, 나는 저것을 닮고 싶었다.


    나도 저 돌담처럼 착실해져야지.

    허튼 데 없이 찬찬히 살아야지.

    웬만한 일에는 유난 부리지 않고,

    담담해져야지.


    부산한 태풍 속에서도 의젓하고 가만하게 선 저 돌담하고도 나는 곧 사랑에 빠질 것다. 끝없이 펼쳐지던 올리브나무와 지평선, 꿋꿋했던 잎 따는 사람들 착실함을 사랑했던 것처. 그런 류의 사랑은 오래도록 머리에 남아 을 바른 데로 이끌어 주리라.


    






















작가의 이전글 자전거로 십 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