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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Aug 30. 2020

하우스 레서피의 당근 케이크

    프란츠 카프카가 단골이던

    프라하, 카페 루브르


    1880년에 문을 열어 지금껏  같은 모습인

    비엔나, 카페 스펄


    알베르 카뮈가 머물렀다던

    튀니스, 카페 데 나트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눈부시던

    부다페스트, 뉴욕 카페




    나는 그런 카페들이 좋았다. 그래서 어느 도시를 여행을 하게 될 때면, 그 도시의 오래된 카페를 자주 찾아갔다. 카페 내부의 묵직한 공기와 공간과 하나 된 낡고 고급스러운 가구들, 그 위에 고이 앉은 긴긴 시간. 이 자리가 바로 누구누구가 오랫동안 앉아 있던 자리입니다, 라고 말하는 종업원의 뽐내는 표정마저 좋았다. 내심 그런 공간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고 나서는 꼭 그런 카페 하나가 이곳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 커피 문화가 늦게 들어왔다면, 카페가 아니라 오래된 찻집이라도. 아, 치솟은 월세 생각도 해야 하겠구나. 민망해지는 마음.


    그럼 카페가 아니라 오래된 식당이나 빵집이라도 찾아보자. 우리는 우리가 지내는 옹포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오래된 가게들을 검색했다. 그렇게 찾은 가게가 당근 케이크를 파는 '하우스 레서피'. 오랫동안 케이크를 만들어 왔다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가게다.



    은둔 고수가 있을 것 같은 길 모퉁이의 낡은 가게. 얇은 유리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가니 오묘한 분위기의 내부가 우리를 맞는다.


    "저... 계세요?"


    부엌에서 하 숏컷 머리와 진한 눈썹 화장을 한 할머니 한 분이 웃으며 나오신다. 할머니는 수십 년간 미국에서, 서울에서, 그리고 이곳 제주에서는 11년째 당근케이크를 만들었다고 자신을 소개하셨다. 또 자기가 만든 케이크가 수년 전엔 청와대에 납품되기도 했다고 조금 빠르게 말씀하셨고. 할머니는 쇼케이스에 놓인 당근 케이크와 당근 찹쌀 케이크와 당근 머핀도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며 차분이 골라보라고 하셨다. 그 말에 가게 내부는 오묘함을 벗고 단단함을 입는다. 할머니는 분명 자기가 만든 케이크에 단정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케이크를 사서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앉아 먹었다. 시트는 땅땅하고 촉촉하다. 속에 넣은 크림치즈는 단단하게 몽글거린다. 케이크가 이렇게 안 달아도 되나? 아니, 안 달고도 맛있을 수 있나? 하우스 레서피의 당근 케이크는 진짜 당근 맛이 났다. 담백하고 물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케이크를 반이나 먹었다. 저 멀리 협재해수욕장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손에 묻은 크림치즈를 쪽 빨아먹으며.



    우리나라에서 수백 년 된 카페나 가게를 찾는 일이 쉽진 않지만, 유행하는 감성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것에 단정한 자부심을 느끼는 가게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통이라는 위대한 단어도 좋지만, 꼭 단어가 아니거라고 그저 '오래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가게들, 거대하지 않고 소박해도 진중함이 담긴 가게들 말이다. 또 지금껏 그 자리를 지켜준 고마운 가게들도 우리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담백하고 맛있는 당근 케이크

    제주도 한림, 하우스 레서피


    정하고 오래된 강원도 빵집

    춘천, 대원당


    백 년 넘게 같은 맛을 내고 있다는

    전주, 하얀 곰탕집


    황동일 시인의 헌시가 새겨진 오래된 다방

    서울 종로, 학림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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