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포구에서 다이빙을

by 권미림

어린아이들은 과감했다. 높은 데서 물로, 자기 몸뚱이를 일자로 길게 늘이고선 망설임 없이 뛰어든다. 퐁당. 작은 몸이 물속에서 피융-하고 떠오르면 호다닥, 다시 땅으로 기어올라가 똑같은 모양으로 다이빙한다. 그 모습을 물속에서 올려다보다가 조금 용기가 생겼고, 나도 아이들 뒤에 섰다.


"이거 안 무서워?"

"네, 진짜 하나도 안 무서워요."


아이들은 나의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든든한 목소리를 낸다. 그래, 그럼 나도 뛰어볼게. 아이들이 길을 터주었고 나는 애들보다 훨씬 낮은 데에 섰다. 하지만 몇 번이나 망설였다. 내가 선 곳과 물 표면까지의 거리가 1미터나 될까, 그랬는데도 오래 망설였다. 뒤를 돌아보니 조그만 키들이 나를 올려다보며 어서 뛰라고 눈짓한다. 그래, 나 진짜 뛴다. 하나, 둘, 둘, 둘, 둘.


ⓒJacob Walti on unsplash


협재 해수욕장에서 차로 10분을 달리면 닿는 판포포구. 그곳은 스노클링이나 패들보드로 유명한 곳이지만, 물이 가득 들어오는 만조 때에는 다이빙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곳이다. 그날은 다이빙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조그만 아이들이었고, 그보다 적은 숫자의 청년들이 있었다. 청년들은 아이들이 있는 데 보다 높은 데에서 뛰긴 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망설이고, 폼을 잡고, 가위바위보를 하고, 다시 기합 한 번 지르고. 반대로 아이들은 망설이지 않았고, 폼도 없고, 내기도 없고,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그냥 물속으로 퐁당이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TV에서 보았던 프리다이버들 모습이 머리에 스쳤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깊은 물속으로 천천히 내려가던 다이버들. 슈트와 오리발, 고글, 수심을 체크할 방수시계를 착용하고, 약간은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정중하게 물속에 들어가는 모습. 우리는 그 모습에 반하여 제주도에 지내는 동안 프리다이빙을 배워볼까도 생각했었다. (우리를 막아선 것은 생각보다 컸던 비용과 오래 숨을 참아야 한다는 막연한 답답함이었다.)


그랬던 우리 앞에 혜성처럼 나타나 말 그대로 '프리'한 다이빙이 뭔지 똑똑이 알려주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를 개운함과 통쾌함 같은 게 올라왔다. 숨을 오래 참을 것도 없이 피융-하고 솟구쳐 오르는 것도 멋지고, 망설임 없이 물로 폴짝 뛰는 모습도 시원했다. 소닥소닥, 애들이 내는 귀여운 소음도 좋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직관이 좋았다. 요 정도 넓이와 깊이라면 다이빙해도 되겠다 싶을 때, 망설임 없이 폴짝 뛰어드는 모습. 오래 재지 않는 그 직관이 나이가 들수록 생각과 고민이 길어지는 나에게 탐나는 게 돼버렸던 것은 아닐까.


상을 직관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논리만으로 살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 앞에는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고 당장에 결정을 내려야 할, 나의 직관을 믿고 나가야 할 일들이 계속해서 주어진다. 그것이 안전한 포구에서의 다이빙일 수도 있고, 그것 보다 더 중요하고 심오한 일일 수도 있고.


아무튼 그런 일들 앞에서 직관을 발휘한다는 건 재치를 써서 그 일을 넘겨버리는 것과 다르다. 재치가 타고나는 것이라면 직관은 만들어지는 것. 한 사람의 직관은 그 사람이 살아오며 경험하고 익히고 배운 것들, 결국 그가 살아온 삶에 근거를 두고 있 않겠는가. 나는 포구에서 다이빙하던 아이들은 아마도 어딘가로 겁 없이 뛰어들었을 때 포근히 받아들여지는 수많은 경험을 해왔을 것이라 생각했다. 리고 그들이 다 자랄 때까지,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 직관의 결과가 틀리지 않기를 바랐다.


ⓒBen McLeod on unsplash


"이제 진짜 뛸 거야. 잘 봐! 하나, 둘... 셋!"


풍덩. 물속에서도 아이들이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아, '결국 뛰어내렸음'에서 오는 해방감에 취한다. 그 취기는 나를 또다시 아이들의 직관 뒤에 줄 세울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을 아이들 흉내를 내며 물로 뛰어들게 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등어회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