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미림 Sep 08. 2020

고등어회 앞에서

    음식 앞에 이토록 긴장했던 적이 있었던가.


    제주 살던 친구의 추천으로 찾아간 오래된 식당. 친구가 말하길  각재기국과 고등어회가 맛있다고 했다. 자리에 앉아 옆 테이블 사람들이 먹는 걸 힐끔 보니, 각재기국은 배춧잎과 물고기(나중에 보니 그건 전갱이였다)를 넣고 끓인 뽀얗고 시원해 보이는 국물이었다. 그래, 저건 먹을 수 있겠다. 그럼, 고등어회는?


    너무나도 익숙한 물고기여서 조림이나 구이나 찌개에서도 자주 봐왔던 고등어인데, '회'라니! 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마음이 뒤엉켰다. 그렇게 잠깐 고민하다가 우린 결국,


    "사장님, 여기 고등어회도 한 접시 주세요."



    큼직하게 썰려 나온 고등어회는 빨간 살 위에 반짝이는 껍질을 그대로 업고 나왔다. 아주머니는 회를 간장 양념에 찍어서 배춧잎에 싸 먹으면 된다 하셨지만 우리는 초장을 달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고등어회는 처음이라서요."


    배춧잎 자르라고 주신 가위로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회를 잘게 잘랐다. 거기에다 초장을 듬뿍 찍어 한 점 입에 넣고 오물거려보니, 다른 회들보다 식감은 흐물거렸으나 비린 맛은 없었다.


    "꼬...꼬...소하네!"


    그다음부턴 초장 다신 간장을 찍어 먹었고 알려주신 대로 배춧잎에 싸서도 잘 먹었다. 하지만 계속 먹으니 느끼하다. 얼른 시원한 각재기국이 나와야 하는데, 싶어 카운터 쪽을 바라보니 우리를 힐끔힐끔 보고 계시던 아주머니와 눈 마주다. 아주머니는 기다리셨다는 듯 곧바로 우리 자리로 오셔서 고등어회가 먹을 만한지 먼저 물으셨다.


    "네, 맛있어요. 근데 각재기국은 언제..."


    주문한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국은 다른 테이블들 위에 먼저 놓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걱정스러운 낯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회 먼저 다 먹고.

     찬 거랑 뜨거운 거랑 같이 먹으면 탈 나."


    그 뒤로도 아주머니는 바쁜 중에도 수시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셨다. 진짜 맛이 괜찮냐고, 식힌 밥 위에 올려 초밥처럼 먹으면 맛있다고, 마늘 더 필요하냐고, 탈 나지 않게 꼭꼭 씹어 먹으라고.



    마지막 한 점이 남았을 때, 아주머니는 얼른 뜨끈한 뚝배기를 가져다주시며 이제 국을 먹어도 된다고 하신다.


    "으어, 시원하다."


    느끼했던 속에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니 이건 또 다른 행복. 아직 더운 날에 잘 상하는 고등어회 먹는 게 좀 염려스럽고 또 입에 남은 옅은 비린 맛도 찝찝했는데, 그 모든 걸 각재기국이 후루룩 쓸어내리는 것 같은 맛이다.


    아주머니는 잘 먹는 우리를 보며 안도하는 듯 씨익 한 번 웃더니, 바쁘게 주방 일에 집중하신다. 고등어회 먹고 탈이 안 난 건 회가 신선했기 때문도 맞겠지만, 고등어회 처음 먹는 우리를 돌보아주셨던 아주머니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토록 우리를 긴장시켰던 고등어회는 이제 이토록 따뜻한 음식이 되어버렸다.











    











작가의 이전글 어느 소설의 플롯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