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살던 친구의 추천으로 찾아간 오래된 식당. 친구가 말하길 거긴 각재기국과 고등어회가 맛있다고 했다. 자리에 앉아 옆 테이블 사람들이 먹는 걸 힐끔 보니, 각재기국은 배춧잎과 물고기(나중에 보니 그건 전갱이였다)를 넣고 끓인 뽀얗고 시원해 보이는 국물이었다. 그래, 저건 먹을 수 있겠다. 그럼, 고등어회는?
너무나도 익숙한 물고기여서 조림이나 구이나 찌개에서도 자주 봐왔던 고등어인데, '회'라니! 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마음이 뒤엉켰다. 그렇게 잠깐 고민하다가 우린 결국,
"사장님, 여기 고등어회도 한 접시 주세요."
큼직하게 썰려 나온 고등어회는 빨간 살 위에 반짝이는 껍질을 그대로 업고 나왔다. 아주머니는 회를 간장 양념에 찍어서 배춧잎에 싸 먹으면 된다 하셨지만 우리는 초장을 달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고등어회는 처음이라서요."
배춧잎 자르라고 주신 가위로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회를 잘게 잘랐다. 거기에다 초장을 듬뿍 찍어 한 점 입에 넣고 오물거려보니, 다른 회들보다 식감은 흐물거렸으나 비린 맛은 없었다.
"꼬...꼬...소하네!"
그다음부턴 초장 다신 간장을 찍어 먹었고 알려주신 대로 배춧잎에 싸서도 잘 먹었다. 하지만 계속 먹으니 느끼하다. 얼른 시원한 각재기국이 나와야 하는데, 싶어 카운터 쪽을 바라보니 우리를 힐끔힐끔 보고 계시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아주머니는 기다리셨다는 듯 곧바로 우리 자리로 오셔서 고등어회가 먹을 만한지 먼저 물으셨다.
"네, 맛있어요. 근데 각재기국은 언제..."
주문한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국은 다른 테이블들 위에 먼저 놓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걱정스러운 낯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회 먼저 다 먹고.
찬 거랑 뜨거운 거랑 같이 먹으면 탈 나요."
그 뒤로도 아주머니는 바쁜 중에도 수시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셨다. 진짜 맛이 괜찮냐고, 식힌 밥 위에 올려 초밥처럼 먹으면 맛있다고, 마늘 더 필요하냐고, 탈 나지 않게 꼭꼭 씹어 먹으라고.
마지막 한 점이 남았을 때, 아주머니는 얼른 뜨끈한 뚝배기를 가져다주시며 이제 국을 먹어도 된다고 하신다.
"으어, 시원하다."
느끼했던 속에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니 이건 또 다른 행복. 아직 더운 날에 잘 상하는 고등어회를 먹는 게 좀 염려스럽고 또 입에 남은 옅은 비린 맛도 찝찝했는데, 그 모든 걸 각재기국이 후루룩 쓸어내리는 것 같은 맛이다.
아주머니는 잘 먹는 우리를 보며 안도하는 듯 씨익 한 번 웃더니, 바쁘게 주방 일에 집중하신다. 고등어회 먹고 탈이 안난 건 회가 신선했기 때문도 맞겠지만, 고등어회 처음 먹는 우리를 돌보아주셨던 아주머니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토록 우리를 긴장시켰던 고등어회는 이제 이토록 따뜻한 음식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