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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Sep 24. 2020

다를 게 없다

1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 애는 살고 싶었을 거야. 그러니까 마지막에는 말이다. 마지막에는...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는 정말 다시 살고 싶어 했을 거고, 후회했을 거야. 내 말은, 마지막에는 그 애도 회개했을 거란 말이다."


    나는 원장의 말을 듣고 고개를 거의 끄덕일 뻔했다. 그녀는 그런 나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이번에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걘 천국에 갔을 거라는 말이야." 천국.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이번에는 속이 조금 스꺼웠다. 


    "네, 천국에 갔으면 좋겠어요."


    나의 말은 다리가 풀려 맥없이 주저앉은 노인의 소리 같았고, 원장실 공기는 차고 무거워졌다. "그 추운 날 바닷물에서 허우적댔을 거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 떨렸고,  눈엔 눈물글썽이고 있었다. 내가 한 마디만 더 하면 아마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거나 코를 풀겠지. 하지만 나에겐 그녀를 위로할 여력이 없었다. 빳빳하고 반짝거리는 가죽 소파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릴 뿐.


    "저...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가야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 다음엔 좋은 일 다시 만났으면 좋겠네."


    좋은 일. 그녀가 기대하는 좋은 일은 뭘까.


    "네, 그래야지요. 건강 챙기시고요... 안녕히 계세요."



-



    그 애는 죽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라고 했다. 죽고 싶은 마음에 카터칼로 손목을 그어 보려고도 했지만 끝내 피는 내지 못했. 쇠독만 올라 붉은 자국 몇 줄만 남겼을 뿐, 자국마저도 일주일도 안 돼 사라졌다고 했다. 몇 달 전에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어떨까 싶어 옥상 난간에도 서 봤다 했지만 도저히,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애의 말을 들으며 처음에는 속으로 허세가 심하다고 생각했, 나중엔 조금씩 그 애 말을 믿게 되었던 것 같다. 아, 그렇게 죽기가 무서웠던 애가 어떻게 맨 정신으로 바다에 걸어 들어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건 찰나가 아니않은가. 그건 긴 시간의 의지아닌가.


    그 애는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바닷가에 신발을 벗어 두거나 A4용지에다 유서를 책상에 놓아두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깊은 바다에서 그 애를 발견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모두들 단순한 고라고 생각했다. 구스다운 점퍼를 입고 있었으니까. 단단히 맨 운동화도 그대로 신고 있었다니까.


    그런데도 원장은 처음부터 그 애 스스로 다로 들어간 것이 단정 지어 생각했다. 그 애 일기장유서 같은 몇 문장이 남아있었. 사실 일이 있기  달 전쯤에 나도  애 일기장을 훔쳐본 적이 있었다. '나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기가 싫은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에 적인 그 문장을 보고도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었다. 그저 당혹스러웠을 뿐. 아, 만약에 내가 그 일기장을 그냥 덮어버리지 않았거나, 그 날 그 애 옆에 있어주었다 지금 살아 있진 않을까.


    그 일기를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애는 깊은 바다로 들어건 것이다. 닷가쓸쓸히 걸어가는 그 애 모습이 CCTV에 남아 있었다. 추운 겨울,  밤이었다.



-



    원장실 문을 닫고 얼른 바깥으로, 다시 정문을 통해 미끄러지듯 원을 빠져나왔다.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원장의 말을 되뇌었다. 그녀의 말처럼  애가 정말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는 죽고자 했던 것을 후회했을까. 정말 마지막에는 자기의 선택을 후회하고, 잘못했다고, 잘못했다고 누군가에게 려달라고 빌었을까. 간절히 살고 싶어 하진 않았을까. 구원. 했던 것일까. 그 생각을 하니 다시 속이 스꺼웠다.


    "참 편하다. 진짜 이기적이."


    원장이 그 애를 죽인 것이 아닌 데도, 순간 나는 그녀가 미치도록 싫었다. 그녀는 그 애가 마지막에는 회개하고, 결국에는 천국에 들어갔다고 믿으므로 자기의 죄책감을 '털어'버렸으리라. 그 애의 죽음에서 해방되었으리라. 여기, 이 세상 말고 더 좋은 세상으로 갔을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자유했으리라.


    하지만 원장의 말대로라면 그 애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그 차고 짠 물을 들이키며 그토록 다시 살고 싶어 했다면,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그 애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기 싫었던 것이지 않은가. 차고 짠 물속에서 그토록 무서워했던 죽음을 이겨내 더 이상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했으리라. 아, 그래야 한다. 그래, 끝까지 후회 없이 살기 싫어했을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바닷물을 들이키며 희열의 노래를 불렀 것이다. 아, 다행이다, 이제야 마음이 편하다. 나도 원장과 다를 게 없다.



_단편,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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