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씨할머니의 인사
고개를 내미는 아침 해 아래, 폐지 줍는 오씨 할머니는 오늘도 각종 폐지를 쟁여놓고 있다.
“5층 총각, 오늘도 일찍 나가네? 아버지는 좀 어때?”
“네, 덕분에 많이 좋아지셨어요. 오늘도 인사를 먼저 해주시네요.”
“아이고, 먼저 보는 사람이 인사하는 거지. 인사는 그런 거여.”
“하하. 내일은 제가 먼저 인사드릴게요. 몸조심하세요. 할머니”
“그려요. 회사 잘 다녀와.”
나는 간단히 목례를 하고 발걸음을 뗐다.
오씨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게 된 건 재작년 여름 무렵이었다.
아버지가 등산을 다녀오다 넘어져 다리를 다친 일이 있었다.
그 흔한 엘리베이터가 없는 구식 아파트인지라 병원을 갈 때마다 아버지를 업고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낑낑거리며 1층으로 내려와 근처 의자에 아버지를 앉혀드리고 집 근처 병원으로 휠체어를 빌리러 갔었다.
오씨 할머니는 폐지정리를 하다 수난이대의 모습을 한 우리 부자를 보고선 좀 쉬라고 마실 물을 건네곤 했다.
내가 휠체어를 빌리러 간 사이에 아버지에게 말동무를 해주셔서 자연스레 나와도 인사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로 할머니의 인사는 늘 “아버지는좀 어때?”가 되었다.
폐지를 주우며 지내는 할머니에게 길고양이들은 소중한 벗이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고양이더러 미물이라고 께름칙해 했지만 할머니에게 고양이들은 그저 본인의 신세와도 같은 생명일 뿐이었다. 겨우내 바들바들 떨던 녀석들을 살뜰히 챙긴 사람도 오씨 할머니와 나뿐이었고. 나도 녀석들을 챙겼다곤 했지만 오며가며 참치캔 하나를 따주는 것뿐이라, 녀석들은 오씨 할머니 손에서 큰 것과 다름없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날, 아파트 입구에서 낯익은 리어카가 보였다.
오씨 할머니의 리어카였다. 이 시간엔 다른 쪽에 대놨을 텐데 고갤 갸우뚱하며 다가간 곳엔 할머니가 새끼고양이들을 어르고 있었다.
“어? 할머니, 웬 녀석들이에요?”
“아, 총각. 오늘 일찍 왔네. 예삐가 배부른 채로 돌아다니더만 고새 새끼들 낳았네.”
“하이고, 이뻐라... 다른 분들 또 할머니한테 뭐라 하는 거 아니에요? 경비 아저씨가 고양이 싹 치울 거라던데?”
“괜찮어. 욘석들도 살라고 태어났는데 치우긴 뭘 치워. 같이 살아야지.”
알 듯 말 듯한 오씨 할머니의 말에 나는 하릴없이 고갤 끄덕이다 한참 뒤에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 고양이 보셨어요? 오씨 할머니가 챙기던 애가 새끼 낳았던데.”
“그래? 그 어른도 참 대단하네. 니 그 할머니 이야기 들었나?”
“무슨 이야기요? 저야 뭐 오다가다 인사만 하니까.”
“자식들이 있었는데, 먼저 간 남편 산소에 다녀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다나봐. 자식들 죽고 보험금 나왔다는데 그 돈으로 여기 이사 와서 혼자 지내신다네.”
“에헤이, 몰랐네요. 그걸......”
인생의 말년을 보내는 이들이 많은 이 동네에서 오씨 할머니는 항상 웃고 다닌다.
하지만 대부분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기에 오씨 할머니는 민망한 미소를 짓곤 했다. 도시의 삶이 그렇다고 하기엔 그녀에게 이 동네는 너무나도 삭막했다. 오씨 할머니의 마음에 핀 봄은 사계절 내내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랐을 뿐이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눌 때면 봄을 머금은 달빛 아래에서 거니는 기분이었던 건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사를 나누고 어렴풋하게나마 대화를 나누는 젊은 세대는 나뿐이었기에 오씨 할머니는 나를 보면 안부인사 삼아 말을 건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할머니의 정을 느낄 새 없이 자라온 나에게 오씨 할머니는 내가 본인의 친손자인 것 마냥 항상 푸근한 미소를 짓곤 한다. 어제,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러시겠지. 오늘밤은 새끼 고양이들을 핑계 삼아 오씨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봐야겠다. 그녀가 봄기운 가득하게 또는 달빛처럼 은은하게 나와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