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선

딱히

by 권씀

딱히 생각나는 건 없지. 희끄무레한 이런 날엔 말야. 맑게 갠 날이었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아냐, 딱히 그렇진 않을 거야. 맑은 날이어도 내 기분은 희끄무레했을 거야. 분명. 이런 날엔 딱히 생각나는 건 없어. 이렇다 저렇다 할 근사한 주말 계획도. 손가락으로 꼽아봐도 뾰족히 떠오르진 않는 걸. 만약 생각이라는 녀석이 물 아래 있었다면 난 미끼를 꿰어 던졌으려나. 그 녀석이 미끼를 물고 수면 밖으로 튀어오른다는 보장도 없을텐데 그냥 무심결에 던졌으려나.


생각이란 게 뭐 또렷할 필요가 있으려나. 그런 말도 있었잖아. 그저 물 흐르듯이. 고여있으면 뭐 어때. 손 닿을 새도 없이 흘러갔었더라도 뭐 어때. 희끄무레한 이런 날엔 딱히 생각이란 걸 하지 않아도 되는 걸. 그저 한 귀퉁이에 놓인 턴테이블 위에 오랜 팝 음악 엘피를 틀고 의자에 걸터 앉아 발을 까딱까딱해도 괜찮지. 희끄무레해 모든 것이 불투명한 이런 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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