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선

젖은 빨래

by 권씀

꾀죄죄한 단칸방 안이 가득 차도록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건조대에 세탁기에서 갓 꺼낸 빨래를 널어둬. 수건은 팡팡 내리쳐서 건조대 갈빗대에 걸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는 옷걸이에 간신히 끼워 넣어 차곡차곡 하나씩 걸고 양말이랑 속옷은 대강 남는 자리에. 온도와 습도가 꽤나 오른 날엔 갓 널어놓은 빨래들처럼 무기력해지기 마련이지.

건조대를 바깥에 꺼내 두면 좀 나을까. 아무래도 빨래를 밖에 넣어두는 건 왠지 부끄러워. 빈약한 내 삶의 패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거든. 빨랫감에 밴 물 냄새를 섬유유연제로 감추려고 해 봐도 다 마르고 나면 그 냄새가 여전한 것처럼 말이야. 이럴 땐 옥상이라도 있으면 덜 할 텐데. 행거에 얼추 걸어놓은 옷을 꺼내 입고 비척거리며 밖으로 향해.

슬쩍 불어오는 바람은 간간하게 삐쭉 솟아오른 땀방울을 식혀주긴 하는데 그리 명확지 않아. 습도는 약이 오른 걸까. 바지 끝을 붙잡고 슬그머니 종아리로, 종아리에서 허벅지로 타고 올라오는데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의 불쾌함이 치밀어 올라. 밖으로 나온 내 잘못일까. 온몸을 휘감은 습도는 악착같이 날 잡고 놓지를 않아 얼마 되지 않은 동안에 온 몸을 흠뻑 적시고야 말지.

빨래를 또 해야 하는 걸까. 빨래를 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바람이 낙낙하게 불고 있는 곳으로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서. 방 안에 우두커니 남아있는 건조대처럼 말이야. 어쩌면 저 공터의 허수아비도 온몸을 말리려고 두 팔을 펼치고 서있는 걸지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억을 지워주는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