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선

와르르

by 권씀

손끝으로 툭 건들면 와르르 무너지는 것들이 있지


공들여 쌓았지만 파도가 물러간 뒤 볕 아래 말라버린 모래성

아등바등 기를 쓰며 살아가다 결국에는 허기져버린 마음

움푹 파인 웅덩이 위 빗물이 차오르면 그제야 떠오르는 나뭇잎 같은 감정

까맣게 타들어간 그것들은 혀끝이나 손끝에 무너져 와르르 와르르 소리를 내네


유약해진 틈을 보고 이때다 싶어 툭 건드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유약한 것들은 더욱 세심히 챙겨야 한다며 어깨를 빌려주는 것들도 있지


이를테면 저녁노을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 가만히 곁에 있어주는 것

한없이 말을 해도 좋고 울어도 괜찮으니 감정을 담아두기만 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것

그리고 아주 가끔이라도 별일없었다는 듯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을 나누는 것

까만 밤하늘 가운데 가끔은 흐리기도 하지만 제 빛을 잃어버리지 않는 달처럼 늘 바라봐주는 것

그런 것들이 어쩌면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목적이 되기도 하지


가끔은 속절없이 와르르 와르르 또 와르르 무너지기만 할 때도 있지만

끝내 다시 일어나 앞에 놓인 삶을 이어나가는 건 고마운 것들이 있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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