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웅크리기만 한 계절이 어슴푸레 저물어가고 이제 입춘이 지나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봄이 되기 전 꽃샘추위가 아직 기다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절기상 봄에 들어섰다는 소식은 반갑기 그지 없다. 입춘은 24절기의 첫 번째로 봄의 시작으로 본다. 아직 추운 겨울이지만 햇빛이 강해지고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외근을 하다보면 바람은 여전히 기세등등하지만, 볕은 봄볕처럼 따사롭게 느껴질 때가 많기도 하다. 사실 입춘이 지난 후 한 달 정도 지나야 계절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으며, 실제로는 춘분이 되어야 본격적인 봄이라고 할 수 있고 보통 3월 6일경인 경칩이 되어야 봄이 시작된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야 비로소 봄이 온 것이다.
해가 바뀌고 설 명절이 지나면 집, 회사, 가게 등의 문에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액막이용 입춘방을 붙이곤 하는데, 입춘(立春)이라는 말을 입춘(入春)이라는 말로 쓰는 경우가 더러 있다. 입춘은 왜 한자로 ‘들일 入(입)’자의 ‘入春(입춘)’이 아니고, ‘설 立(립)’자의 ‘立春(입춘)’일까. 그렇다. 입춘(2월 4일)은 그저 ‘봄기운이 들어섰다’는 뜻일 뿐이다. 결코 ‘봄이 시작되는 날’이 아니다. 더구나 24절기는 고대 중국 황허 강 주변인 화베이(華北)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화베이 지방은 위도가 북위 34.8도로 우리나라 제주도(33∼34도)와 부산(35도) 사이에 위치한다. 화베이 지방보다 한참 북쪽에 사는 서울(37.6도) 사람이 입춘 날 봄을 느끼기엔 힘들다. 봄이 와도 도무지 봄 같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봄기운이 들어섰을 뿐 봄이 완전히 들어오진 않은 것이다.
봄은 유독 기다린다는 표현이 많은 계절이다. 물론 다른 계절도 기다린다는 말을 하지만 유독 봄에 그런 표현이 많은 이유는 아무래도 봄이 되기 전 추운 계절인 겨울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계절의 구분이 명확하지도 않고 일정하지가 않아 봄이나 가을의 경우 스쳐가듯 지나가고, 여름과 겨울은 그보다 더 길게 머무른다. 그래서 24절기의 시작인 입춘이 지나고도 봄이 시작하기까지는 두어달의 시간이 더 걸린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아직은 멀리 있는 것이다. 완연히 봄에 들어서고 꽃이 기지개를 펴는 봄날이 오면, 긴 겨울잠 뒤 찌뿌둥한 몸을 풀 듯 거리로 나서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