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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Feb 17. 2023

여러분, 기술 배우세요

예전엔 이직을 할 때마다 보유 기술란에 채워 넣을 것이 없어서 끙끙 앓곤 했었다.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가진 경력 속 기술은 있었지만 시험을 통해 취득한 기술 자격은 없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른들의 말을 다시금 되새기곤 했었다. 기술 배워 두라는 흔한 그 말. 그 기술이 어떤 기술이든지 간에 쓰일 곳은 있으니 뭐라도 공부하거나 배우고 관련 자격증을 따라는 말이었는데 핑계이자 변명이지만 그렇게 공부할 틈을 사실 가지지는 못했었다. 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분들도 엄청 많지만 사는 게 바쁘고 그저 밥벌이에 목을 매다 보면 기술 공부는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 첫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그 흔한 운전면허증도 없었던 시기였다. 현장 업무를 가거나 출장을 가게 되면 대중교통 이외에는 별 수 없이 회사분들과 동행을 했어야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회사분들 그 누구도 면허증 따라는 말을 하거나 은연중에 재촉하는 건 없었다. 워낙에 박봉이었고 무언갈 할 여력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1년이 지나고 2년 차가 됐을 때 내가 원활히 다니기 위해서라도 운전면허를 따야겠단 생각을 가졌고, 강변에 있던 운전면허학원을 한 달 정도 다닌 뒤 면허증을 손에 쥐게 되었다. 면허를 따긴 했지만 아무래도 운전 초짜인 데다가 출장지가 외곽이나 산지가 많아 운전을 시키는 분은 없었지만 마음 한편엔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었다. 떳떳하게 운전면허증을 내밀 수 있다는 그런 안도감.




그 후 여러 회사를 거치며 자격증을 딸 시간보다는 현장 업무에 바로 적응을 해야 하던 상황이 많았다. 의도치 않게 실전 투입으로 여러 가지 기술을 익히게 된 것이다. A회사에서는 용접과 간단한 선반 제작. B회사에서는 음향 오퍼레이션, C회사에서는 행정 업무 등. 그리고 그 외 여러 가지 기술들.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일을 했고 업무 역시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뻗어나간 것들이 있다. 더 가지치기를 했거나 어느 한 곳에 뿌리를 내렸더라면 지금의 일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에 방영된 강식당에서는 저마다의 역할을 부여받고 임무를 수행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출연자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히 임해 좋은 평을 들었고 여러 시즌을 찍으면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여전히 다시 보기를 통해 시청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장면이 재미있었고 출연자들 간의 케미가 돋보였지만 유독 눈에 띄었던 건 이수근의 모습이었다. 어떤 일들이 닥쳐도 충실히 임하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강식당이 잘 진행될 수 있는 윤활제 역할을 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제작진들도 이수근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자막으로 그의 업무에 넘버링을 매겨서 소소한 재미를 줬는데, 마냥 웃으라고만 넣은 자막은 아닐 거라 생각을 한다. 이수근은 소위 말하는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지만 식당 운영에 있어 별도의 조리 기술을 익히지는 못해서 본의 아니게 멀티플레이어가 된 경우인데, 어떻게 보면 가장 고단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또 그가 아니었으면 못했을 포지션이었으리라. 



이수근은 틈틈이 홀에 나가서 이런 말을 한다. "여러분, 기술 배우세요." 배운 기술이 없기에 고단하지만 어디든 쓰임새가 있는 사람이기에 어떤 일이든 척척 해낼 수 있는 포지션이 강식당 내에서는 '수근아', '수근이 형'이라는 명칭으로 통용된다. 살아가면서 기술 자격증, 혹은 다른 자격증을 요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 자격을 반드시 따야만 할 때가 있다. 기본 자격을 충족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되려 또렷한 기술 자격증이 없어도 그에 응하는 숙련도가 있다면 그 또한 인정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소위 말하는 일머리가 있는 사람, 즉 쓰임새가 있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페널티가 있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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