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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Feb 20. 2023

직장인의 도시락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사무실 근무가 잦아 도시락을 챙기는 게 일상이었다. 연말, 연초에 상급 기관으로 보내야 할 각종 보고서들이 많았고, 그 외에도 사무 업무량이 많아 외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회사 주변에 괜찮은 식당을 하나 뚫어놓기엔 회사에서 식당까지 거리가 멀기도 하고 가격대가 마땅찮아 도시락을 챙기게 됐었는데,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는 일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사무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열흘 정도는 라면을 먹었고 이내 물려버려 빨간 국물이든 하얀 국물이든 비빔면이든 그놈이 그놈으로 여겨질 때쯤, 직원들이 하나둘 도시락을 챙겨 오기 시작했다. 편의점 도시락도 물려버린 입엔 그나마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이 괜찮아서 점심시간이 되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도시락을 꺼내 서로 싸 온 반찬을 바꿔먹는 그 재미가 나름 쏠쏠했다.


대학생 때는 자취를 하긴 했어도 요리하는 것에 큰 흥미가 없었을뿐더러 양 조절이 쉽지가 않아 거의 삼각김밥으로 때우거나 인스턴트 음식을 먹었었다. 그러다 이직을 한 회사에는 그때 당시 속해 있던 부서 건물에 조리 시설이 되어 있어 당번을 정해 11시 30분이 되면 식사 준비를 하곤 했었다. 일 하는 것도 밥심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만들어봤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봤지만, 아무래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볶음류나 찌개류가 간편한 편이라 주된 메뉴는 그 두 종류였다. 가끔 내키면 찜닭이나 마파두부 같은 걸 만들기도 했었고. 자취를 하면서도 늘지 않던 요리 실력이 그때 두어 발짝 나갈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나 혼자 먹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다 보니 간을 맞추는 걸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만들어 먹는 재미가 뭔지 알게 된 건 덤이었다.


근래 들어서는 자주 만들었던 음식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수육, 또 하나는 어묵탕. 둘 다 시간을 그리 많이 소요하는 음식도 아니었고, 드는 품에 비해 양도 넉넉하고 보기에 그럴싸했기에 많이 만들곤 했었다. 그리고 나눠 먹는 즐거움도 괜찮았어서 주된 메뉴였다. 수육과 어묵탕 말고는 주로 유부초밥을 싸거나 집에서 만든 반찬 네댓 개 챙겨 와서 나눠먹은 것 정도인데, 이제는 보고서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됐고 외근을 나가야 하는 일이 많아서 일주일 중 하루를 제외하고는 식당 음식을 먹곤 한다. 해가 바뀌고 물가가 올라 괜찮은 식당을 찾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서 두세 달 정도 사무실에만 근무하던 때가 조금은 그리울 때가 있다.


직장인에게 도시락이란 무엇일까. 같이 근무하는 동료가 있다면 점심시간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면서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매개체일 테고, 부담감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좀 더 부지런하게 생활할 수 있는 하나의 습관일 수도 있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면 다시 서류 작업으로 분주해지는 때가 올 것이다. 그땐 또 어떤 음식을 만들어서 같이 먹을까. 아직 겨울이 채 지나지도 않은 때이지만 다시 다가올 그때를 부푼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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