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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Feb 28. 2023

빗장 위 버킷리스트

외가 동네는 낮은 구릉을 가진 산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산을 보고 마치 용이 누워있는 모습 같다고 와룡산이라 불렀다. 대구가 시내 중심으로 발전하기 전에는 외가 동네에 제법 잘 사는 이들이 모여 살았는데 그들은 잘 살 수 있음이 와룡산 덕이라 해서 해마다 여름 중순쯤이 되면, 마을 입구 느티나무 아래서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나눠먹곤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게 외가 동네의 동제였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가 쇠를 치면 마을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다니면서 북, 장구, 징을 치곤 했는데 어린 마음에는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가 없었다. 괜히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고 누구네 외손자라고 알아봐주면 또 그게 뿌듯했었다. 길놀이가 끝나고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흩어지는 때가 되면, 외할아버지는 구석에서 졸고 있던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제사 음식과 과일을 바리바리 챙겨서 집으로 향하곤 했다.


외할아버지가 손수 지은 그 집은 마당을 중심으로 ㄷ자 형태로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있었고, 안채와 마주 보는 헛간채에는 나무 구유가 걸려있었다. 내가 외가에서 자랄 때는 말이나 소를 키우진 않았지만 그전, 그러니까 어머니가 어린 시절에는 말을 키웠다고 들었다. 외할아버지가 멀리 장에 다녀오거나 중요한 볼일을 볼 때만 헛간에 있던 말과 동행했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너무나도 아득한 옛이야기라 그야말로 전래동화 듣듯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행랑채와 헛간 사이에 대문이 있었고 대문 빗장을 열고 닫는 게 어릴 땐 재밌어서, 누군가 외할아버지를 찾으러 오면 부리나케 달려가서 닫힌 빗장을 밀어 대문을 열어주곤 했었다.


요새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학교에서 나눠주는 탐구생활을 했어야 했다. 여름이 되면 외가에서 줄곧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외가 동네는 탐구 생활을 하기에 제격이었다. 외할아버지 논 한가운데 원두막이 있어서 저녁 무렵이면 원두막으로 가서 옥수수나 여름 과일을 먹기에 좋았고, 근처 강에 가서 멱을 감거나 다슬기를 잡기에 최적이었다. 낮이면 산과 들에 있는 각종 곤충을 채집하기 바빴고 대차게 놀고 나면 금세 저녁이었다. 해수욕장에 가야하거나 차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숙제들을 제외하고는 죄다 외가에서 가능했었기에 방학 내내 외가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지냈었다. 그때 그렇게 가까이 지냈던 시간이 후에 외할아버지가 큰 병환으로 누워계셨을 때나, 외할머니가 노환으로 고생하셨을 때 다른 손주들을 제치고 날 먼저 찾게 된 계기가 아닐까 싶다. '왜 나만 찾으실까.'라는 생각을 어릴 땐 종종 했었지만, 지나고 나니 어른들께서 날 그렇게 찾으셨기에 다른 사촌들보다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단 생각을 한다.


어른이 되고 나서 생긴 버킷리스트 중 몇 개(풀벌레 소리 들으면서 별구경한다거나, 비 오는 날에 연꽃 우산 들고 마실가는 것 등)는 어릴 때 외가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하던 것들인데, 그 기억들은 이젠 반짝이는 추억으로 마음 속에 남아있다. 지난 날을 추억하는 게 가끔은 허무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간절하거나 아쉬움이 많이 남은 건 아닐까. 나의 버킷리스트는 기억 속 외가 대문 빗장 위에 웅크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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