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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겨울 생각나는 어머니의 음식

by 권씀

전기밥솥 안 밥이 이틀째 웅크리고 있다. 조금만 더 바지런하면 갓 지은 밥을 나눠 담아 냉장고에 얼려두면 되는 걸 오늘은 꼭 챙겨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두었다가 잊곤 한다. 밥을 해두고서도 끼니를 챙기지 못해 시간이 지나고서는 묵은 밥이 되는데, 눌은밥으로 해 먹기에도 마땅찮고 버리자니 아까울 때가 있다. 식은 밥이라 하기엔 뭣한 그런 상태. 이런 상태에 놓인 밥을 활용하기에 괜찮은 방법이 있다. 냉동실 안에 있던 멸치 몇 줌과 다시마, 냉장실에 있던 콩나물, 떡국떡과 묵은 김치를 꺼내 우묵한 냄비에 한데 넣고 푹 끓이다 한소끔 끓은 후엔 어설프게 있던 밥을 냄비 안으로 밀어 넣어 한참을 끓인 다음 참기름 두 바퀴를 둘러 완성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걸 갱시기국, 갱국, 갱죽으로 부르지만 내가 나고 자란 지역에서는 밥국이라고 부른다.




어머니는 반찬이 마땅찮거나 찬밥이 남을 때면 어김없이 밥국을 끓이곤 했었다. 지금이야 원체 먹거리나 재료들이 넘쳐나기에 멸치나 뒤포리등 육수 재료들을 골라 쓰지만, 그땐 푹 쉰 김장김치를 많이 넣고 그다음 콩나물, 그리고 양푼이에 찰 정도 양의 찬밥을 넣어 끓여 먹곤 했었다. 가끔 떡국떡이 들어갈 때면 떡국떡만 골라 먹다가 혼나기도 했었다. 돌아서면 배가 고플 나이였던 때는 커다란 그릇 가득히 밥국을 덜어먹고도 모자라서 한 번 더 먹기도 했었는데, 입이 짧았던 시절 유일하게 물리지 않고 먹었던 음식이기도 하다. 다소 칼칼했음에도 물 한 번 마시지 않고 꿀떡꿀떡 잘 먹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바닥이 깊은 냄비 가득 밥국을 끓여내면 온 가족이 동그란 밥상에 둘러앉아 TV를 보면서 밥국을 먹었는데 그 기억이 따뜻한 풍경으로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20대 때 고향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종종 생각나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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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양새가 모양새인지라 거부감을 나타내는 이도 있고 짓궂은 이는 꿀꿀이죽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태생이 다른 방향이기에 경북이나 대구 쪽에서는 엄연히 향토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명절이 지난 후 많이 남은 명절 음식을 활용할 때 전찌개를 끓이곤 하는데 그것과 같은 결이라 볼 수 있는 음식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지는 모르겠지만 타지생활을 하고 있는 경상도 출신들은 이 음식이 좀 그립지 않을까.


며칠간 둔 밥을 먹기란 참 마땅찮다. 회사일이다 뭐다 해서 끼니에는 신경을 쓰기가 어렵고 그야말로 끼니를 때운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할 때는 어김없이 어린 시절 먹던 밥국을 떠올린다. 살림 형편이 조금이라도 괜찮은 날은 참기름을 넣고 그렇지 않은 날은 김칫국물 한 바가지를 넣고 푹 끓여낸 그 밥국. 자식들 배고플까 봐 그렇게라도 챙기면서 미안한 마음 표현하던 그 밥국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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