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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카피바라를 꿈꾼다

by 권씀

남미에 서식하는 동물이자 현존하는 설치류 중 가장 큰 덩치를 지닌 '카피바라'라는 동물이 있다. 이 녀석은 웬만한 대형견을 능가하는 덩치를 갖고 있지만, 특유의 성격 탓에 남미의 먹이 사슬 최하위에 위치한다. 천적을 따로 지정해두지 않아도 육지에는 재규어나 퓨마 등의 동물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아마존 강 아래에는 그 유명한 피라냐 떼들이 언제고 카피바라를 해치울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도 카피바라를 주요 식재료로 취급하기에 도처에 적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런 카피바라는 남미의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물로 평가받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자신은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다. 워낙 온순하고 무해한 동물로 알려져 있어 야생에서 어떻게 멸종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많은데, 설치류답게 번식력이 좋고 특유의 덩치 덕에 공격을 받는 횟수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한다.


요즘따라 사는 게 팍팍해서인지 아님 세상살이가 원래 그래왔던 건지 잔뜩 날이 선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이 가진 잣대가 자신에게는 너그럽지만 타인에게는 그렇지 않기도 하고, 반대로 타인에게는 너그럽지만 자신에게는 냉정하리만큼 적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주변인들에게 카피바라처럼 무해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곤 한다. 물론 상대방이 나를 해하는 존재라면 다소 경계심을 가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둥글게 둥글게 관계를 이어나가기를 원한다. 나 역시도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둥글게 둥글게 이어나가고픈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가진 잣대로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무해한 것을 꿈꾸면서도 유해한 마음을 가까이 두고 부정의 방향으로 생각을 키워나가곤 한다. 결국 그런 행위가 쌓여 내 자신을 괴롭히는 걸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함은 어쩔 수가 없는 걸까.


마음 속에 화를 돌탑처럼 쌓아두고 살 때가 많다. 어떤 이의 행위에 의문을 품고 ‘왜 저런 말과 행동을 할까.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 하면서도 그 사람이 주변에 파생시키는 불편함에 대해 짜증을 내기도 하고, 거리를 둬야겠다는 마음을 품기도 한다. 그러면서 마음 속에 그 사람과의 거리를 두게 된다.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내 잣대를 타인에게 세워두고 혼자 생각을 너무 키우는 건 아닐까 하며 후회를 하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편안함으로 다가설 수 있는 카피바라를 마음에 두고 살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현생의 무수한 일들에 내 마음을 걸어둔 것만 같다. 다음 생이 있다면 그 다음 생에 카피바라로 살기를 희망해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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