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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Feb 26. 2023

삶의 지표

그 언젠가 사는 것이 고마운 일 투성이라는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숨을 쉬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혼자가 아닌 여럿, 바로 우리이기 때문에 그 '우리'라는 하나의 교감 무리를 형성하는 이들이 더없이 소중한 것이라는 그 말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맺은 참 좋은 인연도 있었지만, 그리 좋지 않은 인연도 있었고 다시는 마주하고싶지 않은 인연 또한 있었다. 내 불찰에 의한 것이든 상대의 불찰에 의한 것이든 말이다. 이 표현이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 좋지 않았던 인연은 여러날, 여러달에 걸쳐 고민한 후 솎아내곤 했었다. 이런 경우에는 관계 정리라는 말이 적합하게 들어맞으려나. 모든 인연에게서 배운 것이 있었다. 내 삶의 길잡이로 삼거나 혹은 반면교사로 삼거나.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하나의 울타리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살다 보면 모든 것이 미안하고 고마울 때가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을 않거나 내가 가진 걱정의 무게에 눌려 잠수 비슷한 걸 하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생각지도 않은 연락이 오기도 하고 오래 잊고 살았던 이들을 보기도 한다. 관계라는 게 한결일 수는 없기에 참 친숙했다가 멀어진 인연도 있고, 멀어졌다 싶었지만 생각지도 않게 다시 가까워지는 인연 또한 있다. 그렇기에 현재라는 시간은 과거의 것들을 바탕으로 앞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현재가 더없이 소중한 것이고 그것에 충실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지난 시간을 함께 한 이들 혹은 현재를 함께 하는 이들에게 충실해야 하는 것은 내 모습을 잘 알고 곁에 있어주는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현재를 산다는 것. 앞을 바라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과거를 딛고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사는 것.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살면서 주변도 돌아보고 가끔은 뒤도 보고 그렇게 지나온 시간들을 보면서 한발짝씩 나간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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