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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Feb 24. 2023

자취와 독립, 그 사이 어딘가.

얼마 전 오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내심 이 녀석이 결혼을 한다고 말을 하려나 싶어 괜히 침을 삼키고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야, 자취는 할 만 하냐?" 아!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자취라. 세상이 정해놓은 것 중 적령기라는 단어가 있다. 이 나이가 되면 무얼 해야하고 저 나이가 되면 또 무언갈 이뤄놔야하는 것. 그걸 두고 OO적령기라 부르곤 하는데, 나도 그 단어에 익숙해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취를 하고 있다고 하기엔 이젠 나이가 그 단어를 넘어선 느낌이라 해야 할까.

정서적인 독립은 아직 한창 멀었지만 경제적인 독립은 어느 정도 이룬 상태이기에, 내 고정관념일 수도 있지만 자취라는 단어 보다는 독립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더 근접해있다. 물론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자취를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생활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독립이라는 단어보다 오히려 사전적 의미로는 내게 깔맞춤인 단어가 자취인 것이다. 그런데 난 왜 자취라는 단어에 그토록 낯섦을 느낀 걸까. 




언젠가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의 생활 패턴이 다르다 보니 가끔 갑갑함에 훌쩍 뛰쳐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서. 이를테면 가출 같은 맥락? 친구들 중 하나가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야, 그건 가출이나 뭐 그런 게 아니라 독립 아니야?" 다른 친구들이 그 말을 듣고선 아 그렇지. 그건 독립이지 하며 맞장구를 쳤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까. 자취보다는 독립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자리 잡은 게. 

종종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밥은 잘 해먹는지 심심하진 않은지 그런 걸 물어볼 때가 있다.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집에 쌀은 안 떨어졌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이 정도 나이면 혼자서도 잘 해먹고 잘 살아야죠 하고 대답을 하면 으레 그렇지 라며 맞장구를 쳐주시곤 한다. 가끔은 본인 집에 공간이 있는데 이사할 곳이 마땅찮으면 하숙 개념으로 들어오라는 분도 계시고. 그 말에는 부러 손사래를 치며 독립적 삶을 더 만끽하고 싶다고 말을 하곤 한다.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이 사전적 의미로는 자취에 가깝지만, 심적으론 독립에 더 가까운 요즘이기에 조금은 더 이어나가도 되지 않을까 싶다. 훗날 가정을 꾸리고 가장이 되면 자취나 독립이라는 단어는 옅어지겠지만, 우선 지금 독립적인 자취의 삶을 이어나가는 걸 충분히 만끽하고픈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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