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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술

by 권씀

어린 시절도 그렇고 요즘에도 어머니는 밥이 애매하게 남으면 단술을 만들곤 한다. 방앗간에서 엿질금을 사다 면보에 넣어 그 위로 물을 적당량 부어 한참이나 치댄 뒤, 남는 밥솥을 활용해 만들곤 하는데 짧게는 한나절 길게는 이틀이면 많이 달지 않은 단술이 만들어진다. 달지 않은 단술이라는 말이 아이러니하지만, 단맛보다는 구수한 맛이 혀끝에 맴돌기에 그리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것 같다. 혼자 살면서 요리 도구들이 그리 넉넉할 필요도 없기에 딱 필요한 정도만 구비해놓고 있는데, 요즘엔 집에서 밥을 해먹는 일이 뜨문뜨문해서 전기 밥솥을 그냥 놀리느니 활용해보자 싶어서 기억을 더듬어 단술을 만들게 되었다. 쌀도 좀 남겠다. 설탕도 있겠다 싶어서 말이다. 엿질금으로는 고추장도 만들 수 있지만 거기까지 하기엔 괜한 시간과 노동력이 들어가기에 그나마 만만한 단술을 생각하게 됐는데, 처음 만들어본 것 치고는 꽤 괜찮게 만들어졌다. 아쉬운 거라면 역시 계피를 넣지 않아 밋밋한 단맛이 난다는 것.


앞서 말한 것처럼 요즘도 어머니는 단술을 만들곤 하는데, 본가에 가면 입에도 안 대는 음식들이 혼자 있으면 종종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단술도 그렇고 오이소박이, 정구지 찌짐(부추전), 동치미 국수, 멸치볶음 등등. 이런 음식들이 생각이 나서 만들면 양이 늘 넘치는데 넘치는 것들은 주변에 나누곤 한다. 이를테면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는 날이면 반찬으로 챙겨간다거나 지인에게 덜어준다거나. 그렇게 소분한 것들을 같이 먹거나 나눌 때면 뭔가 뿌듯한 마음이 생긴다. 나름대론 이게 정이겠거니 하는 것도 있고.


어릴 땐 무척이나 이기적이어서 어머니가 애써 만든 음식들을 이웃이나 주변 분들과 나누는 게 엄청 아까웠었다. 우리가 먹을 음식인데 왜 나누는 걸까 싶었고, 이 음식을 주면 저 분들은 뭔가 우리에게 주는 게 있을까 하는 그런 못된 생각. 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또 주변 사람들과 여러 관계를 맺으면서 그 생각은 사라졌다. 나 혼자 먹을 수도 있겠지만 맛있는 음식이 있거나 괜찮은 것들이 넉넉하면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나누는 게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그 이기심을 밀어냈다.


바빴던 일정이 지나고 어느 정도 여유 시간이 생긴 뒤, 추진하던 일들을 도와주거나 응원을 해 준 분들과 뭔가 나누면 좋을 것들이 어떤 게 있을까 생각을 했었다. 역시 먹는 게 남는 거라고 놀고 있는 전기밥솥 핑계를 대면서 만든 단술이 이제 완성됐다. 어린 시절 내가 어깨 너머로 본 어머니의 단술만큼은 아니지만, 얼추 흉내는 낸 그런 음식. 어쩌면 난 헛헛한 마음을 이렇게 달래고 있는 걸지도, 그 마음을 스스로 채우기 위해 이렇게 또 하나의 자체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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