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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산책(기억 속 풍경)

by 권씀

역마살이라 해야 할까. 어릴 때부터 원체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어서 여기 저기 여행도 가고 업무적으로도 이동이 많았었지만, 이제는 정착을 하려는 마음이 크다. 한편으론 또 시간이 흐르면 어디론가 이동을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곤 한다.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얕아진 것도 있고.

중간에 문화재 관련 직업을 가지지 않았던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문화재 인근에 거주지가 있었다. 안동과 경주, 수원이 그랬고 나고 자란 대구도 차로 조금만 이동하면 문화재가 코 앞이었으며 지금 살고 있는 청주도 마찬가지다. 사실 거주지 근처에 문화재가 산재되어 있으면 처음엔 자주 들여다보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좀 무뎌진다. 직업도 그렇고 업무도 그렇고 아무래도 문화재를 많이 접하다보니 무뎌지는 것도 있고, 한편으로는 풍경이 일상에 녹아들면 내 생활 반경에 들어오기 때문에 무뎌지는 게 있다. 그럼에도 예전에 살던 곳 근처의 문화재나 풍경을 보게 되면 괜히 반가움이 앞서곤 한다. 오랜만에 경주에서 교육이 진행된 덕에 3년 전쯤 살았던 이 곳 경주에 와서 첨성대를 비롯해서 동궁과 월지, 월정교, 천마총, 많은 왕릉 등 인근 관광지와 문화재들을 돌아보고 있다.

경주에서 살 때는 불국사 인근에 살아서 주말이 되면 입장표를 끊고 구경을 많이 갔었는데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보니 이번 교육에는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무튼 경주에서 살 때는 무뎌졌던 풍경들이 어제와 오늘은 새롭게 다가오기도 하고 내가 참 좋은 곳에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낮은 땅과 하늘이 그 위로 펼쳐진 건 아무래도 문화재가 산재된 곳이기에 일종의 제약이 생겨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는 거지만 그 덕에 편안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건 의외의 소득이리라.

본가가 있는 대구에 대한 감흥은 별달리 없지만 이십대를 오롯이 보낸 안동이나 그 후에 살았던 경주는 늘 마음에 그리움으로 맺혀 있다.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살면서 보았던 많은 풍경들과 풍경들이 줬던 평화로움이 그 감정을 계속 잡게 하는 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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