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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Jun 18. 2023

새벽으로 향하며

유난히 맑았던 하루였기에 무척이나 따가웠던 낮은 저멀리 뉘여놓고서 달이 참 높이 떠있다. 새벽으로 향하는 길은 늘 어둑어둑하고 느지막하다. 권태로운 나른함은 어느덧 요란스레 울어대던 고양이들도 고로롱 잠에 들게 한다.


평일의 피곤함은 한데 모아 의자 다리에 기대놓고 허기진 마음을 달래려 저마다의 잔을 채워 새벽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왁자지껄하기도 울먹이기도 잠잠하기도 한편으론 한없이 다독이기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다 생각을 하지만 다름 사이 닮아있어 서로의 허기진 마음을 술잔 가득 술로 채우는 걸로 대신한다. 졸린 눈을 부비며 깜빡이는 신호등 아래 차들은 제 갈 길 찾아 바지런히 움직이고, 지루한 술자리를 마치고서 집으로 향하는 중년 사내의 머리 위로 구름 뒤 숨 죽이고 있던 별들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서 기지개를 켠다. 기력을 다했던 지난 날을 위로하기 위한 충전이라는 명목으로 거나하게 한 잔 마신 이들은 길고 길었던 하루를 닮은 그림자를 끌고서 집으로 향하고, 잠 못 드는 이들의 한숨 속에 간간히 불빛은 반짝인다.


세상살이의 퍽퍽함을 덮어두고서 아름다움을 찾아본다. 도심 속 구석 어딘가 피어오르는 이름모를 꽃, 어린 아이들의 잠꼬대, 아이를 재우는 젊은 부부의 나지막한 자장가 소리, 손을 꼭 잡고서 쌔근쌔근 잠에 든 연인, 묵은 구름 뒤 섬세히 빛을 내는 별의 무리, 자박자박 내딛는 발걸음 아래 내일의 희망을 품는 마음.


한데 그러모아 생각을 뭉치고 있다보면 피로에 잠긴 두 눈을 꾹 눌러본다. 한참이나 누르다 손을 떼면 아련히 반짝이는 무언가가 시야를 가득 채우고, 귀가가 늦은 가족을 기다리는 집의 TV 브라운관은 제 할 몫을 다했다는 듯이 치지직 소리를 내며 하루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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