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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Jun 15. 2023

무제(無題)

점점 풀내음이 진해지는 이 계절에 

하루 쳇바퀴를 돌리고 또 돌리고

곤죽이 될 때까지 하염없이 페달을 밟는데

불현틋 무기력증이 불쑥 날 찾아오네


덩치가 여간하지가 않은 이 녀석은 

우연히 찾아오는 듯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을 거라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 혼잣말을 되뇌이지만

기어코 내 발목을 근사하게 잡아챈 녀석은 

끝도 모를 아득한 골짜기로 날 끌어내리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는 또 예고없이 먹구름을 드리우고

점점이 옅어지는 빗자국에 마음 담아 하염없이 바라보며

긴 한숨 머금었다 길게 내뿜으며 속엣말을 삼키고 또 삼켜낸다


곰팡이처럼 피어난 나의 사색은 무기력하기도 부지런하기도 해

생각의 지문을 죄다 닳게 만들어 어디 하나 쉽게 짚을 곳을 주지 않지


나는 결국 이렇게 가야 할 곳을 잊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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