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시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씀 May 31. 2023

본능

깊은 산속 오도카니 있어야 할 그것은

먹이를 찾아 걸음을 아래로 아래로 향하다

점점 산과 멀어져 버렸다


새끼들은 젖을 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직 어미의 품이 그립기만 한데

먹이를 찾아 떠난 어미와 아비는 돌아오지 않았다


필시 배가 곯아 내려갔을 어미와 아비는

길을 엇갈려 내려갔고

조심스러웠던 걸음과는 달리

유독 불거졌던 덩치는 눈에 쉬이 띄어

그르릉 소리 한 번을 내고서 흰 눈 위 붉은 자국을 남겼다


지아비를 잃은 지어미는 길게 울음을 내뱉고

그래도 새끼들 살리겠노라 다짐을 하며 이 산 저 산을 누볐지만

두 다리로 곧게 선 것들은 지레 겁을 먹고 총부리를 겨누기 바빴고

매정한 쇳덩이와 한없이 굳어버린 아스팔트길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온기라고는 하나 없는 창살을 두고 사람들은 그것을 가두었고

딴에는 배려랍시고 날고기를 함부로 들이밀며 모진 생을 연명케 했지만

그것은 설산 깊이 두고 온 새끼들이 그리워 하염없이 눈을 멀리 두는데

말을 잃어 목소리마저 잃어버린 그것의 눈은 형형한 빛이 사라지고

어느샌가 서글픈 눈물만이 그렁그렁하네


황금빛 바탕에 검은색 줄

쌍심지를 켠 듯한 날카로운 눈 아래 근엄한 수염

한때는 영물이라 불리던 그것


어쩌면 그것도 그저 본능에 따르는 하나의 생명이었을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알던 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