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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Dec 01. 2023

가역성

살집이 꽤나 오른 팔을 검지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떼보면, 하얗게 질린 살덩이가 금세 본래 모습과 색으로 돌아온다. 한참이나 그러고 있노라면 무심의 것들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처음엔 넌지시 중간즈음엔 지긋이 종국엔 뻐근하게 괴롭히는데, 참다 못해 결국엔 무심의 것들을 저멀리 내동댕이 치고야만다. 실상 뭐든 의미를 부여할 건 아닐테다. 의미를 부여하면 얼마나 방대한 것들이 산재하는가.


길에 서성이는 고양이와 강아지도 바람에 흔들리는 꽃도 오가는 발걸음에 함부로 채이는 돌멩이도 의미를 부여하면 한없이 커지는 것들이 이른바 존재라 불린다. 가끔은 그런 것들에 손가락을 갖다대보곤 한다. 무심한 듯 세심히 거친 듯 조심스럽게. 곧게 뻗은 손가락 사이 채인 것들은 바르르 떨기를 반복하고, 함부로 손을 댔다는 생각에 어이쿠야 싶어 저만치 내려놓는다.


가역성이라는 게 알고보면 별 거 없다. 잠깐이든 한동안이든 돌아올 수 있다면 수없이 눌러도 그만이기에. 어쩌면 마블코믹스에 나오는 도르마무같은 거랄까. 하지만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금방 돌아오는 게 사실은 영원하진 않다는 걸 알고있다. 그럼에도 때론 수없이 꾹. 꾸욱. 꾸욱 눌렀다가 떼었다가를 반복한다. 이를테면 날이 선 말에 베인 마음이라던가. 마냥 밀려 벼랑 끝으로 내몰린 마음이라던가. 그런 마음에 가역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오늘은 마음에도 가역성이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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