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가 내려앉은 벤치 위엔 두 노파가 오랜 시간 머무르고
도란 도란 이야기 하나 없이 오가는 이들을 구경하네
사실 이런 날에 벤치에 앉으려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라 깔 것이 있는지 찾아보게 되지
노파는 어디서 구해왔을지 모를 달력을 북북 찢어 벤치 위로 놓고나서야
이제야 안심이라는 미소를 띄고 볕구경을 하네
대충 찢어낸 달력엔 그의 얼굴이 곧게 새겨진 지난해의 12월이 있어
그 달력에는 배광(背光) 앞 그가 두 팔을 벌리고 서있고
그 앞에는 그를 따르는 이들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네
네 이웃을 사랑하라던 그의 가르침은 어쩌면 지금일지도 몰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어느 무명 예술가의 손끝에서 그려졌을 그는
아무 말 없이 기꺼이 본인의 몸을 내어주네
차갑게 식어버린 벤치 위에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