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근무가 예정된 금요일이 다가오면, 괜히 설레는 마음으로 목요일 퇴근 후 집 근처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간다. 오이는 아직 비싼 편이라 햄(또는 참치), 깻잎, 우엉, 당근, 김 이 정도만 구입을 해도 충분하기에 그리 많이 들 것도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재료 손질을 한다. 당근과 우엉은 채썰어서 후라이팬에 달달 볶고 자투리 계란은 두껍게 구워 길쭉하게 자르고, 참치는 체에 얹어 기름을 빼고 밥은 소금 약간 넣어 간을 해주면 재료 준비는 금방이다. 공기밥 2/3분량의 밥을 쥐고 김 위에 편 다음 준비된 재료들을 얹고 돌돌 말면 금세 한 줄이 완성이 된다. 칼질을 하는 게 살짝 귀찮긴 한데 그래도 통으로 먹는 것보다 담음새도 있는 편이 나은지라 김밥 두 줄을 잡고 툭툭 썰면 그럴 듯한 비주얼이 된다.
김밥. 속재료에 따라 맛도 다르고 김밥 전문점이 어디냐에 따라서도 맛이 천차만별이기에 그야말로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때는 박리다매로 한 줄에 천원 한 장이면 든든히 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음식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간편히 먹을 수 있고 지겹지 않게 먹을 수 있기에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사실 사먹는 게 편하기는 하지만 나는 내 손이 가는 걸 더 선호하는 지라 잊을만 하면 김밥을 말곤 하는데, 김밥을 말아온 시간을 생각해보면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사무실보다 바깥에서 업무를 볼 일이 많기에 사무실 근무를 하는 날이 귀한 편인데, 대체로 금요일은 사무실 근무를 하는 날로 정해져 있다. 지난 겨울 서류 작업을 할 것들이 많던 때에는 주로 컵라면으로 때우거나 가끔씩은 어묵탕이나 떡볶이, 수육 등을 만들어 나눠 먹곤 했었다. 아무래도 겨울에는 속이 든든한 것도 그렇고 따뜻한 음식이 그리울 즈음이었기에 국물 요리가 최우선의 선택이었다. 겨울 지나 봄이 되고 외근을 나가기 시작하면서 음식이 쉴 염려가 없던 때에는 팀장님과 의논을 해서 도시락을 챙겼었다. 오전 업무를 끝낸 뒤 마을 정자나 강변 근처 나무를 찾아 점심을 챙겼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곳에서 먹기엔 역시나 유부초밥이나 김밥이 제격이라 기왕 도시락을 싸는 김에 넉넉히 싸곤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다들 만족스러워 했어서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곧 여름이 다가와서 그 소소한 즐거움은 가을로 넘기긴 했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 김밥은 소풍을 가거나 운동회를 하는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유부초밥을 싸온 친구를 보면 괜히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깨 너머 보는 유부 초밥보다는 내 입에 들어오는 김밥이 최고였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저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기만 했었고 본격적으로 내가 요리에 손을 댄 건 대학교 입학해서도 한참이나 뒤였다. 친구들이랑 먹으려고 김밥을 만들기도 했지만 같이 여행을 가면 역시 안주류를 만드는 게 최선인지라 닭볶음탕, 어묵탕, 쏘야 등이 주된 메뉴였다. 김밥은 아주 가끔 생각날 때 사먹는 정도. 그러다 사먹는 음식이 지루해지면서 요리를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어지간한 건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쌓였다. 꽤나 먹을만 하다 싶을 정도면 나름 괜찮은 것 아닐까. 많은 메뉴 중 김밥을 가장 많이 만들게 되는 건 재료를 구하기도 쉽고 휘뚜루마뚜루 속재료들을 졸이고 부쳐서 휘리릭 말면 근사한 한끼가 되기에 가성비가 괜찮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에다 뒷정리도 깔끔하니 이 얼마나 편한 음식인가.
마음이 복잡하거나 설레거나 혹은 손이 심심하면 김밥을 만다. 가끔은 성의없이 말기도 하고 또 가끔은 정성들여 말기도 하고. 차근차근 하나씩 말다보면 마음은 평온해지고 같이 먹을 사람이 있다면 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먹을 생각에 포근해지곤 한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내게 금요일은 김밥을 마는 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