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외삼촌

by 권씀

막내 외삼촌이 내 나이 즈음일 때, 나에게는 외할아버지인 아버지를 먼 곳으로 보냈다. 막내 외삼촌은 외할아버지 나이 마흔을 훌쩍 넘어 얻은 막내아들이었다. 손이 귀하지는 않았지만 아이 울음이 흔하지는 않아서 위의 누나들은 어머니 대신해서 막내 동생을 업고 키웠다.


국민학교를 들어가 머리가 굵어질 때 즈음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던 날, 같은 반의 아이들은 외삼촌더러 어머니가 안 오시고 왜 비녀를 꽂은 할머니가 학교에 오셨냐고 물어보았더란다. 막내 외삼촌은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어머니라고 말을 했다. 나이 많은 어머니가 부끄러워 몸을 배배 꼬던 형, 누나들과는 달리 막내가 되려 당당하게 우리 어머니라고 말을 한 것이다.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하고 취직을 하면서 형제들은 각 지방으로 흩어졌다. 고향 집 근처에 있던 대학교 주변으로는 벽돌로 쌓은 높은 건물이 들어서고 젊은 사람들이 왕래를 시작하면서 생기 넘치던 고향이 점점 삭막해지기 시작했다. 고령의 나이에 접어들던 외할아버지의 유산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레 형제들 간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심지어 명절에도 넉넉한 웃음이 아닌 날카로운 고성이 오갔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외할아버지는 몸져누웠고 몇 해 지나지 않아 먼 곳으로 떠났다. 외할아버지 떠나던 그해는 여든 되던 해였고 막내 외삼촌 나이는 겨우 서른다섯이었다.


아버지 잃은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하던 누나들은 어릴 적 업어 키운 막내 동생이 가장 가련하다 했다. 형제 중 가장 짧은 세월 아버지를 본 막내가 가장 가련하다 했다.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나이 많았고 어머니 젖을 못 먹고 컸지만 위의 형제들보다 의젓한 막내여서 가련하다 했다. 손수 지은 집에서 마지막을 보낸 외할아버지는 며칠 뒤 고향 성주 땅으로 떠났고 장례식 내내 울음을 참던 막내 외삼촌은 그제야 눈물을 흘렸다.


막내 외삼촌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던 셋째 누나에게 겨우 말을 꺼냈다. 날갯죽지 하나가 떨어져 나가버린 것 같다고. 그래서였을까. 막내 외삼촌은 유독 셋째 누나의 아이들을 아꼈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나오는 제품들을 먹어보라며 종종 경산에서 대구로 들르고, 고민 있으면 언제든 말을 하라며 웃어 보이곤 했다.




속 깊은 사람이라 그만큼 속앓이도 많이 하던 막내 외삼촌은 그 탓인지 이가 빨리 빠지고 날로 여위어 갔다. 많이 빠져버린 이가 부끄러워 어느 순간부터 막내 외삼촌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얼른 틀니를 하라며 채근하는 셋째 누나에게도 괜찮다며 웃어 보였고, 몇 달 동안 재촉하고 나서야 틀니를 맞췄다. 몇 해만에 보는 막내 외삼촌의 미소는 참 포근했다.


몇 해 전 늦가을 큰 외삼촌이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시던 그때, 막내 외삼촌은 오래 전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때처럼 위의 형제들을 챙기며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연이 끊어졌던 사람들에게도 누구누구 동생이라며 장례식장에 와주십사 전화로 부탁을 하였고 빈소를 계속 지켰다. 부모님 몰래 담배를 피우는 조카 녀석들에게도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담배 같이 피우러 나가자며 웃어 보이고 울다 지친 누나들과 형을 다독였다.


별이 환하게 뜬 밤, 커피 사주겠다며 밖으로 나가던 그 밤에 막내 외삼촌은 외할아버지가 생각나노라 말을 꺼냈다. 그리 살갑지는 않았지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 외삼촌이 아버지 같은 존재였기에 마음이 비어버린 것 같다며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오래전에 외할머니도 돌아가신 터라 막내 외삼촌에게는 유독 서글픈 밤이었다. 아내와 자식이 있지만 부모가 없어서 고아가 된 느낌인데 아득하게나마 의지했던 큰 외삼촌마저 떠나버려 원망보다는 붙잡지 못하는 슬픔이 크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막내 외삼촌이 길게 뿜어내는 담배연기 뒤의 씁쓸함을 보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꼬박 40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