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씀 Jan 01. 2024

달빛 사냥꾼 #6

6화 : 누명 그리고 현재

지금은 시가 된, 그때 당시엔 군이었던 양원군은 사냥꾼들이 오가는 곳이었지만 조용한 곳이었다. 국토개발이다 뭐다 해서 산과 임야의 나무를 베어다는 일이 잦았지만 정부의 개입으로 입막음되고 있었다. 그런 곳이 지리산 골짜기에서 요란스레 총성이 울린 다음날 아침 발칵 뒤집힌 것이다.


따르르릉-따르르-     


"네, 양원군 경찰서입....."     


"거기 경찰서죠? 여기 지리산 초입인데 얼른 와보소. 클났다. 사람들이 타 죽었어!!!"     


  경찰들이 도착한 장소에는 다리에 붕대를 감고 벌벌 떨고 있는 젊은 사내와 줄담배를 태우는 노인이 있었다. 젊은 사내는 차로 호송을 해서 동행을 하게 되었고 경찰들은 끔찍하다 못해 기가 막힌 장면을 보게 되었다. 모닥불 언저리에는 타다 남은 시체들이 있었고 머리에 부상을 입은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저... 저기 있는 사람이.. 나도 죽이려고 했습니다..으흐흑...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진정하시고 일단 좀 앉아 계세요. 어르신이 대신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하.. 하모... 내사 마 기가 맥혀서...저 젊은 총각이 달 사냥인지 뭔지 할라다가 저 무리랑 합류한 모양일세. 근데 자네들도 알잖는가. 여기 산주 박씨 성질 고약한 거.. 저 총각이 억시게 욕먹었는 갑데. 이틀 밤동안 그래 욕먹고 그래도 자기 몫은 했는가 봐. 달 사냥하고 나서 똑같이 노났는데 저짜 쓰러져 있는 양반이 봄에 결혼하는데 돈이 궁했는 갑데. 더 주니 마니 하다가 마침 술상 봐주러 온 아가씨. 카이까네 저 사람 마누라 될 여자를 보고 하이고 이 양반들이 눈깔이 뒤집혔는가 봐, 젊은 총각이 그카면 안된다 카는데도 저 사람을 마구잡이로 패고 여자를... 큼.... 총각은 말리다가 맞아서 쓰러졌고. 내 살다 살다 이런 꼬라지는 처음 보네. 그려."     


"그러니까.. 어르신 말씀은 저 시체들이 그 남자들이다..?? 여자를 집단으로...."     


"그래..!! 하이 고마... 미친놈들. 어제는 달도 시뻘겋게 되가 요상하더라만. 기절했던 저 냥반이 일어나서 자기 색시 구해보겠다고 총을 쐈다고 하네. 거기에서 색시도 죽고.. 저 젊은 총각이 정신 차려보니까 불을 붙이고 있더라는 거야. 그래서 또 그걸 말린다고 달려들다가 칼에 찔렸고.. 젊은 사람이 진국이제 참말로.."     


  과학 수사라는 것과는 멀었던, 그래서 구시대적인 수사 기법이 남아있던 시절이라 노인의 말이 중요한 단서가 되었고, 그들이 지난밤 사냥한 달빛 조각들의 절반은 춘기에게로, 나머지 중 일부는 제보자인 노인에게로 나머지는 국고 환수가 되었다.     


  후에 깨어난 오씨는 살인 및 시신 훼손의 죄를 짊어지고 20년형을 받고 교도소로 가게 되었다. 오씨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기에 당장이라도 죽고 싶었으나 어쩐 일인지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무기징역에서 20년형을 받게 되었다. 후에 친해진 교도관이 건네 준 이야기로는 춘기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교도관이 건넨 말론 춘기 본인도 사랑하는 여자가 그런 꼴을 당하고 있었다면 그랬을 테니, 부디 선처해주십사 했다는 것이다. 물론 법조계로 뒷거래가 오갔기에 그 정도의 입김이 통했다.     


"두고 보자... 정춘기... 내가 여기서 나가게 되면 기필코 네 놈을 죽이리라.."     


  오씨는 그 후로 교도소에서 20년을 지낼 동안, 매일 몸을 단련했다. 춘기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F방직 외동아들, 살인범과의 혈투]     


  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이었다. 말쑥한 청년이 험악한 살인범을 이겨낸 이야기는 꽤 오랜 시간을 맴돌았다. 사람들이 본인들이 상처를 준 일은 금방 잊어도 타인들이 고통받거나 자극적인 이야기는 오랫동안 기억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춘기는 쟁취한 달빛 조각들을 챙긴 뒤 노인의 집에 들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며칠 뒤 노인이 노환으로 사망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노인이 입막음으로 춘기에게서 받은 달빛 조각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달빛 조각의 가치는 꽤나 높아서 부친이 운영하던 방직회사가 여러 사업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정부기관에 청탁을 한 것도 경쟁업체를 제치는 데에 큰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정부 인사 중 달빛 조각이 들어간 조각품이 없는 이들이 없을 정도였다. 그걸 받지 못한 이들은 삐딱선을 타고 있다는 이야기도 돌았으니. 그렇게 춘기는 정부 주도 하에 여러 사업에 뛰어들었고, 차츰 회사를 불려 나가게 되었다.     


  30여 년이 지난 현재. 오씨는 그가 살았던 지리산을 떠나 철마다 밀렵이 허가되는 시기에 알음알음으로 사냥을 해주는 일을 하며 춘기에게 복수할 것을 잊지 않았다. 그가 잠을 청하는 컨테이너 안에는 항상 엽총이 있었다. 그가 잊지 않은 건 복수뿐만이 아니었다. 달빛 조각을 다시 사냥하리라는 마음도 복수심만큼 커져가고 있었다.




"회장님, 다녀왔습니다. 오씨라는 분 여간내기가 아니던걸요. 혹여나 마주치거나 보게 되시면 경호요원을 더 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어. 그래? 다리는 어떻던가?"     


"많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그 다리로 엽총을 들고 있는 게 참.. 지팡이가 어울릴 법한데 말입니다."     


"크흐...그렇단 말이지? 크큭!!그때 제대로 찍었구먼."     


"무슨 말씀이신지..?"     


"아, 아니야!! 진우 자네 수고 좀 더 해줘야겠군."


"네, 분부만 하십시오. 회장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캬.. 이래서 내가 널 좋아해.. 오씨한테 가서 달빛 사냥 이야기를 꺼내보게.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노라고 말이야."     


"거절하면 어떡하죠?"     


"너 맷집 좋지? 들어줄 때까지 찾아가. 응? 지랄하면 들어주고 크큭..때리면 맞아줘라."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벌써 열흘째였다. 오씨는 매일 찾아오는 진우와 정이 들 지경이었다.     


"좀 가..!! 씨발!! 어??? 난 다 필요 없어!! 그 새끼 죽이는 것만 생각했는데 필요 없다..!! 나 좀 내버려둬..!!!!!"     


"오 선생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회장님이 원하는 일 다 들어주신답니다. 선생님이 안 일어날 때까지 저도 여기 박혀있겠습니다."     


"크허~~끅..취하지도 않네. 야..!! 그럼 그 새끼가 직접 오라고 해.. 응?? 얼굴이나 보잔다고.."     


"그.. 그건 좀...."     


"그래..?? 그럼 꺼져 인마!! 회장이 뭐 별 대수냐... 간이 요만치도 없는 새끼..."     



     

  며칠 뒤, 서울 근교의 농원.     


"여, 오씨 형님 오랜만입니다. 얼굴이 많이 상하셨구먼. 크큭..동생 얼굴이 그리 보고 싶었소?"     


"저 친구 얼굴은 왜 저래? 오랜만이군."     


"아!! 진우..?? 별거 아니요. 감히 나보고 오라 가라 하길래 귀여워서 우리 애들이 살짝 간 봤나 보네. 기분 상했수?? 캬!! 우리 형님 역시 예전부터 자기 눈에 약해 보이는 놈들은 이리도 이뻐하시네. 크큭"     


"휴... 됐고.. 달빛 사냥은 무슨 말이냐. 나 그거 접었다. 나 네가 분질러 놓은 발목이 시원찮아서 잘 걷지도 못한다. 난 볼일 없으니 이만 가라."     


"야.. 이 형님 말주변 늘었네. 큭.. 내 시간 뺐어놓고 그게 할 말 이유? 응? 그냥 말하겠습니다. 그냥 듣기만 하쇼. 판단은 좀 우리 애들이랑 상의해보시던가. 크큭."     


  춘기가 건넨 제안은 조금은 솔깃했다. 정부 주도 하에 달빛 사냥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 명맥을 다시 이으려 하는데 달빛 사냥꾼이 필요한데 보통 사냥꾼은 되지도 않고, 과거에 달빛 조각을 떼어내거나 달을 교란시키는 반사경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정 회장의 인맥 안에 사냥꾼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보통 사냥꾼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들에겐 달빛 사냥을 경험해 본 베테랑이 필요했다. 정 회장은 그래서 오씨를 찾았던 것이다.     


"형님, 빵에 들어갈 때만 신경을 쓰다가 출소할 때에 두부 하나 못 건넨 건 미안하오. 근데 나도 사는 게 바빠서 말이지. 크큭..보상은 뭐 두둑해요. 정부 주도니까.. 사냥개가 필요한 건 아니고. 사냥개를 훈련하는 조교가 필요한 거지. 일종의 정부 요원이랄까. 달빛을 떼어다 팔면 국익에 도움이 된답니다. 이 얼마나 좋소? 날 미워하는 건 알겠지만.. 연이 씨 일은 미안하우..크큭"     


"연이 이야기하지 마라."     


"어우, 한대 치겠소. 아무튼 남은 노후 생각하면 연락 주시오. 야, 최진우! 일로 와봐! 이 분 오늘 생각 깊게 하시게 좋은데 모셔다 드려. 응?? 좀 씻기고."     


"네, 회장님"     


"일 잘 풀리면 장가들게 해드릴게. 응? 돈방석에도 앉혀드리고? 이 얼마나 좋소?"     


"....... 야. 정춘기. 너 한 대만 맞자."     


퍽!!!     


  쓰러진 건 오씨였다. 30년 전처럼 그렇게 오씨는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깨어난 곳은 F그룹 소유의 호텔. 오씨의 옆에는 젊은 아가씨가 자고 있었다.     


"야, 잘 감시해. 요란스럽다 싶으면 뽕이나 프로포폴 입에다 멕이고. 혹시나 모르니 미리 약을 쳐놔야지."     


"네, 회장님"     


  며칠 뒤 말끔해진 모습으로 오씨는 정부 기관의 인사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빛 사냥꾼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