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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Dec 31. 2023

달빛 사냥꾼 #5

5화 : 탄약 냄새와 피비린내

지리산의 밤공기는 몹시 찼다. 붉은 달을 뒤로하고 춘기의 이죽거리는 웃음은 사냥꾼들의 심장마저 멎게 했다. 춘기가 쏜 첫발은 모닥불로 향했고, 미처 총을 잡지 못한 유씨는 춘기를 향해 소리를 쳤다.     


"이.. 이봐!! 신입! 자네 왜 그러는가.. 손에 든 건 또 뭐고? 일단 진정해. 왜 이래.!!!"     


"저 미친 새끼... 야 이 새끼야. 총 내려놔. 산도 못 타는 놈이 총은 제대로 쏴..? 한번 겨눠 봐.!!"     


"아이고. 와이카노, 박가야.. 니 이라믄 클난다. 사람 달래고 봐야지. 봐라...!! 이 사람아.. 니 와카노.. 으잉?? 좀 진정을 하.... "     


탕..!!!!!!     


  춘기의 어설픈 총질에 먼저 쓰러진 건 큰 형님 격인 김씨였다.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얼굴의 일부가 사라진 그는 무릎을 꿇은 채로 그 자리에 쓰러졌다. 유씨는 비명을 지르며 춘기에게 무작정 달려들었다.      

"야!! 너..!! 우리한테 왜 이래!!"      


탕!! 타당!!     


  연발로 발사된 총에 쓰러진 유씨를 지긋이 바라보며 춘기는 빙긋 웃어 보였다.      


"거... 당신은 말이 많아.. 뒈질 때도 지껄이는군...큭큭"     


  박씨는 술기운 탓인지 아님 꿈같은 상황 때문인지 비틀거리다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 씨발놈이.... 왜... 왜!!!! 나 때문이냐..? 응?? 이 개새끼야... 흑... 으흑..."     


"큭큭큭. 울어요?? 어이 아저씨. 왜 울어. 무서워? 내 말 들어봐. 며칠 전에 오두막에 참한 아가씨를 봤어. 이름이 연이라던가... 그 아가씨 마음 얻으려고 내가 이 되지도 않은 달빛 사냥인지 뭔지 했거든. 근데 당신도 그렇고 다른 새끼들도 남자다운 척하면서 사람을 무시하더라고. 오씨..??? 그 사람 말곤. 근데 말이야. 오두막에 그 아가씨랑 결혼할 사이라며..? 내가 원하는 건 가져야 하거든. 그래서 뭐.. 그 여자랑 했지.. 큭.. 반항하는 게.. 참 좋았어."     


"너 이 새끼... 이 미치.." 퍽—!!!

 

  춘기는 개머리판으로 박씨의 입을 사정없이 찍어 내렸다.     


"우.. 으으... 끄으....."     


"닥쳐. 이 새끼야. 한 번만 더 새끼니 뭐니 욕하면 돌로 찍어버릴 테니까. 암튼... 그 여자랑 하고 나서 겁이 나더라고. 오씨한테 불까 봐 말이야. 그래서.. 뭐 죽였어. 근데 죽이고 나니 별거 아니던데.. 사람 목숨 별거 있어? 당신도 그렇고...크큭...윽..!!"     


  승리감에 도취되어 정신없이 말을 늘어놓던 춘기는 왼쪽 허벅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박씨가 사냥용 칼을 춘기의 허벅지에 찔러 넣은 것이다.     


"이 미친 새끼가!!!"      


탕!!!!!! 탕!!! 타당!! 탕!!     


  춘기는 엽총으로 박씨의 머리를 향해 겨누고서 마구 갈겼다. 동굴 속은 한참 동안이나 총성의 울림으로 메아리가 울렸다.     


"아........ 씨발. 큭. 아프네. 크큭"      


  춘기는 쓰러져있는 박씨의 옷을 찢어 허벅지에 아무렇게나 감았다. 그리고서 쓰러진 사냥꾼의 시체들과 연이의 시체를 한데 모아 불을 붙였다.     


탁-타닥-화르륵!!     


  붉은 달처럼 죽은 이들을 태우는 모닥불은 몹시도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어슴푸레 빛나는 달빛 아래 덩치 큰 사내의 몸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오씨였다. 오씨는 허망하게 연이의 편지를 바라보다 무작정 오두막을 나섰다. 불러도 대답 없는 연이의 이름을 부르며 얼마나 헤맸을까. 멀리서 들리는 총소리에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서 발길을 재촉했다. 이윽고 그는 총성이 울린 동굴 근처 절벽에 다다랐고 그의 눈앞에 펼쳐진 건 지옥도였다. 동료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춘기가 마대자루에서 끄집어낸 건 헐벗다시피 한 연이였다. 달도 저물어 주위는 몹시 어두웠지만 분명히 그 모습은 연이였다.     


"으극..흑...여..연이야...으으...."     


  새어 나오는 신음은 오씨의 몸을 뒤덮었고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몸을 일으키는 순간 발을 헛디딘 오씨는 그만 절벽에서 굴렀다.     


"으아악!!!"     


"하... 씨... 뭐야... 어..?? 오씨 형님 아닙니까..?? 큭... 꼴이 그게 뭐요..!!"     


"끄으으.. 저.. 정..... 춘기.. 너 연이를 왜......."     


"아... 오두막에 보내줘서 고맙소. 덕분에 그 여자 맛을 잘 봤소... 반항하는 게 참 좋던데.. 응??"     


"어흑...너 이 개새끼....... 죽여버릴 거야."


"한번 해봐. 응?? 그 몸으로 어떻게 해볼 거야? 넌 안 돼. 내가 누군 줄 알고 응??"


  춘기는 엽총을 거꾸로 잡고 개머리판으로 오씨의 발목을 향해 그대로 찍어버렸다.     


"으아악!!"     


"후..! 이래야 못 쫓아오겠지? 암튼 난 이 조각인지 뭔지 챙기고 가요. 거 치료 잘하시고.. 여자는 뭐 많잖소?? 아!! 직업이 사냥꾼인데 뭐 좋다는 여자는 잘 없지?? 크큭"     


  춘기는 개머리판으로 오씨의 머리를 찍었고 그대로 오씨는 정신을 잃었다. 춘기는 본인의 체취가 묻은 옷가지를 불에 던져 놓고 엽총은 땅에 파묻고 자리를 떴다. 사냥꾼들의 달빛 조각들은 챙기고서. 무심한 달은 숲 속으로 향하고 있었고 날은 허망하게도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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