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깊은 밤, 총소리
끼이이— 쿵..!!!!
삐걱대는 문을 열고 들어간 오두막의 공기는 차가웠다. 연이의 냄새가 밴 공간은 어두컴컴한 비린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연아..!! 연이야! 니 불도 안 켜고..."
간신히 난로에 붙을 붙이고 기름등 심지에 불을 붙이니 오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헤집어져 있는 상과 의자, 그리고 피비린내였다. 전리품을 잔뜩 챙겨 와 흥분이 가시지 않은 오씨의 코에 닿은 피비린내는 이상한 불안감을 안겼다.
"아니..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부엌엔 그릇이 다 깨져 있었고 창문은 깨져 있어서 눈이 어지러웠다. 차가운 날 탓에 식어버린 피는 몹시도 끈적해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낮에 내려 보낸 춘기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고 연이도 없었다. 바닥에 놓인 한 장의 종이에 연이의 짧은 글만 남겨져 있을 뿐.
"전 당신이 싫어서 떠나요."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춘기랑 도망을 가버린 것이라면 이 핏자국은 무엇인가. 얼마 뒤면 행복한 신혼의 꿈에 젖어 들 연이인데. 피비린내가 섞인 사내의 울음소리가 오두막 가득히 울려 퍼졌다.
사냥꾼들이 한창 달빛 사냥을 하던 그 시각, 춘기가 누워있는 방으로 연이가 기척을 내고 들어왔다.
"저, 죽 만들어왔는데 드시겠어요?"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난 춘기는 황송한 표정으로 그녀가 건네는 죽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시게 된 거예요? 오빠랑 같이 사냥 다니는 분들은 다 봤었는데 사냥꾼처럼 안 보여서요."
"아...! 전 소소하게 산나물이나 나무를 해다가 살아왔습니다. 사실 사냥은 오늘이 처음이라 서투네요."
"그러시구나. 어쩐지.. 헤헷.. 전 연이라고 해요. 정연이. 오빠도 그렇고 다들 좀 우악스럽거든요. 하는 일이 그러다 보니. 그래서 춘기 씨가 좀 말쑥하신 분이라서 사냥이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아.. 하하.. 네.. 그렇죠..?"
"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거죠 뭐. 쉬운 일은 아닌데 대단하셔요.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또 말이 많아졌네. 쉬세요!!"
싱긋 웃으며 나가는 연이의 뒷모습에 춘기는 입술을 떼다 말다 한참을 그러다 결심을 한 듯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춘기에게는 그녀를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저.. 연이 씨!!"
춘기가 부르는 소리에 연이가 뒤돌아보며 대답을 하려는 순간, 춘기의 입술이 그녀를 집어삼켰다. 이틀 전에 노인을 통해 사놓은 포박 줄과 엽총은 춘기가 연이를 망가뜨리는 도구로 쓰게 되었다. 한참을 엎치락뒤치락하던 두 그림자 중 하나가 쓰러지고 그대로 몸을 포갰다. 이윽고 옷이 갈가리 찢긴 연이의 하얀 속살은 달빛에 눈부시게 빛을 뿜었고 춘기의 손이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무런 보호막도 없는 연이의 몸을 덮어줄 옷가지들은 한구석에 밀려나 있었고 춘기의 날카로운 송곳니는 그녀의 하복부로 향했다.
"어흑..!!!흑!!!윽!!!!!“
"며칠 전에 너.. 널..!!! 보고서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몰라...!!!! 울 아버지는 나 원하는 건 뭐든 다해줬거든..!!! 근데 다들 너무 인형같더라고..크큭...킥..킥킥킥—이렇게 반항하는 맛도 있어야지"
"흡...읍..!!!흑흑!!!읍읍...!!!"
"근데 오씨... 랑 결혼한다고...?? 뭐 맘대로 해.. 근데 맘대로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더러운 몸으로??"
"다.. 당신.. 오빠가 오면..... 오빠만 오면....!!!"
"어젯밤에 박씨... 한테 내가 좀 화난 게 있어서 말이야.. 근데 당신 오빠인지 뭔지 그 냥반은 나한테 잘해주더라고? 그러면 끝까지 잘해줘야지.. 안 그래? 가만히 있어봐. 박씨 그 새끼도 뒈질 테고. 니 잘난 오빠는 뭐 생각해 볼게."
춘기의 뱀 같은 움직임에 연이는 살갗이 벗겨지도록 몸부림을 쳤다. 악마가 있다면 이 놈이리라. 어찌 은혜를 이런 짓으로 갚는단 말인가. 한참을 연이를 날카롭게 할퀴던 뱀의 움직임은 살짝 떨림이 있고서야 끝이 났다. 바닥에는 연이의 붉은 피가 흥건했고 더운 공기가 그들을 덮치고 있었다. 춘기는 옷을 끌어당겨 입는 연이를 보고서 빙그레 웃다가 엽총을 집어 들었다.
탕—!
쓰으—윽–텁-터업—스으윽—
"헉..!!읏!!!끄으응.. 아이고.. 뒤지게 무겁네."
춘기는 마대자루에 담긴 연이의 몸을 들 힘이 떨어져 끌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에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눈이 내리지 않은 것이라 해야 할까. 그마저도 무거워 끌고 산을 오르니 가뜩이나 망가져버린 연이의 몸은 사람의 것이라고 하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튀어나온 나뭇가지에 찢긴 마대자루 사이로 연이의 하얀 팔이 튀어나왔다.
"얼레? 뭐야. 징그럽게..... 에잇 퉤!! 망할 삽이라도 들고 올걸.. 적당한 데가 없나?"
ㅛ
순간 춘기의 머릿속에 지난밤 머무른 동굴이 생각났다. 동굴이 아니라도 동굴 근처에 적당한 곳이 있으리라 생각을 하고 기억을 더듬어 동굴로 향했다. 몸의 일부를 잃은 달은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오씨가 참말로 귀중하데이, 살을 쏘는 게 보통일이 아닌데 아무 말도 하잖고 샥 움직이자네."
"거 그건 오씨가 재빨리 움직이니까 그렇잖아요. 나도 말 속도만큼 몸이 빨랐으면 까짓 거 식은 죽 먹긴데. 하하하"
"다음에 유씨 니가 해볼래? 거 불알 달고 나온 놈이 말만 해서 되겠나? 으이?"
"하이고 박형요, 대장님이 그리 오씨를 챙겨주는 게 제가 낄 자리 나 있겠습니까? 반사경 드는 걸로 충분합니다. 하하하핫"
"그나저나 오두막에 그 비리비리한 놈 내려갔는데 별일 없었겠지? 오씨가 약해 보이는 거는 그래 측은히 생각을 해사 큰일이다."
"뭐 별일 있겠나. 우리는 오늘 밤 달빛 조각들 그윽~하게 보믄서 찐하게 술 묵으면 되는기라. 봐라봐라. 유가야. 고기 더 썰어봐라. 으이? 안 묵다가 묵으니까 고마 살살 녹네!"
보통 때라면 이런 고깃덩어리도 먹지 않고 따로 추려놨다가 장터에 내다 팔 그들이었지만, 몇 년간을 놀고먹어도 남을 달빛 조각을 손에 거머쥔 밤이기에 배가 터지도록 술과 고기를 먹고 있었다.
"어..??!! 봐라. 무슨 소리 안 들렸나?"
"무슨 소리..? 이 형님 술 마이 자셨는가 보네!"
"어.. 조용!! 씨바거. 이상한 소리 나는 거 맞는데?"
그들은 본능적으로 엽총으로 손을 갖다 대었다. 술을 많이 마셔 손이 떨리는 그들이었지만 눈빛만은 형형히 빛을 뿜고 있었다. 그 순간.......
탕..!!! 타당!! 탕탕! 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