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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Dec 30. 2023

달빛 사냥꾼 #3

3화 : 균열

오씨의 뒤를 따라 춘기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냥꾼들은 반가움보다 그의 몫으로 나눠질 고라니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인정이 남아있는 그들이었기에 땀으로 온몸이 젖은 춘기를 말로나마 챙기는 사냥꾼들이었다.


"아이구 잘 올라왔어. 신입 자네 고생이구만!"     


"왔나? 내사마 걱정 마이 했데이. 고마 잘 왔다."     


"야이 씨발놈아, 뭐하러 왔냐!! 좆같은 새끼야. 이봐. 오씨 당신 몫만 챙기지 저 새끼는 왜 데리고 왔어? 어이 비리비리한 놈, 처맞기 전에 내려가. 어? 같이 올라오면 뭐라도 얻을 줄 알았나 본데 썩 꺼져!!"     


  사냥꾼들은 박씨의 욕지거리에 거부감이 드는 한편, 내심 안도했다. 낮 시간의 사냥에도 걸리적거리는데 어두운 밤이면 더할 것이 아닌가. 산에서의 활동 특히, 사냥은 뒤떨어진 사람에 대한 측은함은 우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속된 말로 지랄맞아도 빠릿빠릿한 이가 제격이기에 춘기는 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 형님.. 저 내려가겠습니다."     


"하이고, 박가 형님!! 그러지 말고 춘기가 동굴에 내려가서 밥이라도 지어놓으면 안 되겠습니까? 자네 가만히 있어봐. 그래도 힘들게 올라왔잖어!!"     


"오씨, 당신 저놈이랑 뭐 있어? 왜 그리 감싸? 어이, 비리비리한 놈, 어떡할 거야? 오늘 모처럼 보름달이 떠서 사냥하기 좋은데 너 있으면 못해. 가뜩이나 힘든 건데 네 놈이 있음 못한다고."     


"그럼... 전 방해되지 않게 동굴에 가있겠습니다. 어젯밤 신세 졌는데 밥이라도.."      


"아니, 그냥 밥이고 뭐고 필요 없으니 꺼져. 네놈이 지은 밥 어지간히 목에 넘어가겠다. 이 새끼야."     


"........ 네."      


"아이고 참.. 춘기 자네, 이쪽 길로 쭉 내려가면 오두막이 있거든.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오늘 밤 사냥 끝나고 그쪽으로 내가 감세."     


  춘기는 간단히 고개를 숙이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내려갔다. 오씨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서있다 박씨와 유씨의 재촉에 고라니의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휘익-탁!! 타악!! 쉬익!!!!퉁!!투둥!!!     


  낮 시간이지만 산에 해거름은 빨리 찾아오는 법이다. 어둑하고 조용한 산길이 춘기의 정신 사나운 발길질에 몹시도 소란스러워졌다. 난데없는 발길질에 날아간 돌멩이는 빽빽한 나무 사이에 이리저리 튕기고 있었다.      


"에이, 씨발!! 고작 사냥이나 하는 주제에 모욕을 줘? 다른 새끼들은 말리지도 않았다 말이지..? 총으로 그 새끼들 대가리를..."      


  혼잣말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한참을 걸어 내려온 춘기의 눈앞에 지난번에 마주친 오두막이 있었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선 춘기의 눈앞에 그녀가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 안녕하세요. 전 정춘기라고 합니다. 달빛 사냥하러 왔는데 제가 몸이 안 좋아서요. 오씨 형님이 말씀 주셔서 왔습니다."     


"아! 오빠가 말했구나. 그래요, 저기 침대 있는데 눈 좀 붙이세요. 죽이라도 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근데 오씨 형님이랑은 어떻게..?"     


"우리 내년 봄에 같이 살기로 했어요. 아.. 사냥꾼 중에 박씨 아저씨..? 헤.. 오빠라고 하기엔 좀 그래서.. 암튼!! 그분한테 돈 조금씩 내면서 같이 사냥 다니고 있어요."     


"아, 그러시구나.. 결혼을..."     


"네..! 우리 오빠 좀 덤벙거리죠? 웃음만 많고. 어떻게 살려나 몰라!"     


"저, 그럼 눈 좀 붙일게요.."     


"네네, 아이고, 제가 말이 많았네요. 쉬고 계세요."     


  춘기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춘기의 맘에 들어온 여인이 오씨의 약혼녀라니.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올 리 없었다. 혼자 헛물을 켠 그였지만, 그녀를 안아보고 싶다는 망상은 욕망이 되어 어떻게든 그녀를 가져야겠단 마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바스락!     


"쉿..! 오씨는 달빛이 안 비치는 쪽으로 들키지 않게 돌아서 가! 얼른!"     


  오씨는 발소리를 최대한 안 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숙련된 사냥꾼들이었지만 달을 속이는 것은 어려웠다. 짐승들을 잡을 땐 한쪽으로 몰아 잡으면 되지만 달은 어디든 틈만 있으면 빛을 비추기에 숨어서 움직이기 어려웠다. 유씨는 유들유들한 말주변과는 달리 다소 몸짓이 투박했고, 오씨가 오히려 날렵했기에 달빛 사냥에는 그가 꼭 필요했다. 숨과 발소리를 죽인 오씨가 달빛을 피해 나무 뒤에 숨고 박씨를 필두로 서서히 포위망을 좁혔다.  


쉬—익!!!!     


  몸을 숨긴 오씨가 먼저 엽총에 박힌 살을 날렸고, 다른 사냥꾼들이 저마다의 동선을 따라 반사경을 들고서 달을 교란했다. 어지럽게 움직이는 그들에게 달은 홀려버렸다.     


쉬—익!! 쉭!!! "맞았다!!!" "맞혔어?!!"     


  세 번의 겨냥 끝에 살에 걸린 달빛의 조각이 우수수 떨어져 나왔다. 제 몸의 일부를 잃은 달은 붉게 변해버렸고 사냥꾼들은 전리품을 찾기 위해 오씨에게 뛰어갔다.     


"어디 봐. 야 이번엔 조각이 많이 떨어졌는걸?"     


"휴.. 역시 오씨야. 역시 달 사냥엔 자네가 있어야 되는구먼."     


"내가 뭐라 했노. 오씨가 와따라 캤제? 껄껄"      


  사냥꾼들은 의외로 많이 떨어져 나온 달빛 조각에 번지르르한 웃음과 말을 늘어놓으며 사냥의 일등공신인 오씨를 한껏 치켜세웠다.


"으하하핫!뭐 여러 사람들 덕분 아닙니까. 이걸로 잘 노나 봅시다. 다음 해에는 달빛 사냥 안 해도 되겠네요. 으하핫!!"


"아. 그래. 자네 결혼이 코앞이잖은가. 이걸로 흥정만 잘하믄 자네 집도 사고 그러믄 되겠구만."     


욕지거리를 입에 달고 사는 박씨도 오씨를 챙기면서 간만의 달 사냥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이걸 보여주면 연이가 을매나 좋아할까나? 요놈으로다 반지를 만들까. 으하핫!!"     


  술을 먹진 않았지만 취기가 오른 것처럼 오씨의 발걸음은 재빨라졌다. 산주이자 대장격인 박씨와는 사냥을 한참 한 사이건만 셈에 있어서는 유난히도 이기적이었던 박씨인지라 결혼 축하 조로 달빛 조각들을 더 받아 든 것이 조금은 낯설었다. 하지만 어떤가. 그만큼 고생을 해왔으니 이 정도는 받아도 된다고 오씨는 찜찜한 마음을 이내 거뒀다.     


  동굴에서 뒤풀이가 있을 예정이었지만, 오두막에서 기다리고 있을 연이가 생각에 밟혀 다른 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두막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낮에 먼저 내려 보낸 춘기가 조금은 신경 쓰이기도 했고. 얼마나 걸었을까, 긴장이 풀린 탓인지 몸에 맺힌 땀이 식을 때 즈음 저만치 오두막이 보였다.  


"으흠흠~엇..!!왜 불이 꺼져 있나.. 연아!!! 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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