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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Dec 29. 2023

달빛 사냥꾼 #2

2화 : 춘기, 낮 사냥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해 집 근처 산에서 칡이나 더덕 같은 것들을 캐다가 장터에서 팔아왔습니다. 그런데 나물을 캐다 산주인이 몽둥이를 들고 내쫓는 바람에....... 그래서 달빛 사냥은 오늘이 초행입니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춘기에게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다 이내 거두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밤에 달을 사냥하는 일은 하루 이틀 해서는 안 될 일이었고, 더더군다나 춘기는 초짜였다. 나물 캐고 팔던 이가 사냥에 가당키나 한가.     


"어이, 봐라. 자네가 초행이라 캤으이까네 하는 말인데 달빛 사냥하는데 방해나 하지 마소. 자네만 어려운 거 아니니까, 내일 밤 달빛 사냥에 방해되겠다 싶음 날 밝는 대로 내려가고....... 응? 거 비리비리하게 생겨가 그간 하던 나물이나 뜯어다 내려가던지. 뭐 얼굴 반반하니까 여기 외로운 사람 있으면 돈 받고 몸을 대주면 되겠네."     


  사냥꾼들 중 대장격인 박씨가 막무가내로 내뱉은 말이었다. 오씨는 그런 말을 내뱉는 박씨가 탐탁지 않았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오씨도 산의 주인인 박씨에게 일정의 삯을 주고 합류한 터였다. 그가 하는 말에 아니다 싶어 소리를 냈다가는 야밤에 쫓겨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군다나 여기는 지리산이 아닌가. 총이 있고 길을 잘 안다 해도 분명 산의 밤길은 위험하리라. 사람 좋은 유씨가 얼른 분위기를 바꿨다.


"박가 형님 왜 이러실까? 술 얼마 마시지도 않았구먼. 밤도 깊었으니 얼른 눈이나 붙이자고요. 신입 자네도 얼른 자."     


"아암, 그라모, 그래야제. 박씨도 열내지 말그라. 다들 힘든 거 아이가! 그쟈?"     


"그래, 맞어. 춘기라고 했나? 여하튼 자네도 얼른 자. 유씨야, 박씨 형님 좀 챙겨라."     


  사냥꾼들이 유씨의 말에 한 마디씩 보태고 나서 붕 떠버린 동굴엔 어색함만이 흘렀다. 유씨가 불씨만 남은 모닥불에 잔가지를 밀어 넣고 다들 자리를 깔고 누웠다. 이윽고 사람들이 낮게 코 고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춘기는 슬며시 이를 깨물고 돌아누웠다.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지껄여......?"     




  춘기는 당시만 해도 방직공장과 철강사업만 운영했던 F그룹의 외동아들이었다. 그가 신분을 숨기고서 이곳에 오게 된 건 순전히 일탈 욕구였다. 남 부러울 것 없이 떵떵거리던 그에게 무서울 것이라곤 없었다. 아버지의 명의로 차도 구입하고 원하는 물건이 있다면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눈치를 보고 살지 않은 탓에 눈에 보이는 것은 그의 차지가 되어야 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물리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꼭 갖는 그였다.      


  익숙한 서울을 떠나 지리산 기슭으로 오게 된 건 단순히 새로운 먹잇감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런 그가 산 중에서 헤매다 오두막에 있는 여인을 보게 된 건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게 될 불씨였다. 산속 오두막에 외로이 있는 그녀를 보고서 혈기가 넘친 그는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가지려 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리산 인근의 사냥꾼들이 달빛 사냥을 한다는 이야기를 산 어귀의 노인에게서 건네 듣고 수중에 가진 돈으로 노인에게서 총과 옷을 샀던 것이다. 달빛 사냥인지 뭔지를 하고 그 달빛의 조각을 조금이나마 갖게 되면 그녀에게 달려갈 참이었다.      


  그가 여태껏 여자를 가진 방법들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내키지 않은 다소 서정적인 모습이었지만 당신에게 주려고 사냥을 했노라고 말을 할 참이었다. 춘기에게 돈은 넉넉했기에 노인을 통해 산 출입 및 달빛 사냥 허가증을 받았고, 쉽게 동굴에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방금 전 박씨의 욕지거리에 춘기는 마음을 달리 먹게 되었다.     




날이 밝았다. 피워놓았던 모닥불은 다 꺼져가고 있었고, 사냥꾼들은 하나 둘 깨어났다.     


"어이, 춘기, 잘 잤는가? 어제 박씨 형님 말은 마음에 너무 담아두지 말어. 오늘 밤에 있을 사냥 때문에 좀 그랬나 봐. 나도 뭐 저 형님 말하는 게 거슬리지만 어쩌겠어."     


"네, 별 신경 안 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싱긋 웃어 보이는 춘기의 모습에 오씨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마음을 놓았다.     


"그래, 허허, 그럼 밖으로 나가자구."     


  낮 시간 동안에는 달빛 사냥을 시작하기 전 몸을 풀 겸 고라니 사냥을 할 참이었다. 달빛 사냥을 할 때의 금기 중의 하나가 살생을 금하는 것이었으나, 그도 이젠 어렴풋한 규칙이 되어 사냥꾼들에겐 뜬구름 같은 이야기였다. 먹고사는 게 벼랑 끝에 있다 보니 야금야금 갉아먹는 규칙이 되었던 것이다.     


"여, 다들 일어났소? 동굴은 역시 몸에 안 받아. 어이쿠. 얼레? 어이, 비리비리한 놈 안 내려갔어?"     


"네, 방해되지 않게 움직이겠습니다."      


"아이고, 그래요! 하룻밤 잤으니 이제 동료 아니유. 잘 생각했어. 그럼 그럼"      


"씨발, 니미럴 꺼 동료는 무슨, 고라니 새끼들 잡을 때 나물이나 캐던지 맘대로 해."     


  춘기는 지난밤의 수모가 떠올라 순간 움찔했지만,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간단히 주먹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사냥꾼들은 고라니를 잡을 채비를 했다.     




"허억, 헉 헉!!"     


  사냥꾼들의 걸음은 빨랐다. 칡과 더덕을 캐던, 아니 산을 처음 접한 춘기에게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이었지만 사냥꾼들에게는 동네 마실이나 다름없었다.     


"저 봐, 야, 비리비리한 새끼야, 너 나물도 안 캐봤지? 등신 같은 게.... 너 때문에 다들 늦어지잖아!!"     


"헉..!! 헉!!! 죄.. 죄송합... 쿨럭..!!! 컥!!"     


"이봐 춘기, 괜찮어? 나 춘기랑 있을게. 먼저들 가소."      


"오씨가 남으면 고라니 가죽은 누가 벗겨요? 겨울 초입이라 고라니 덩치도 커졌을 텐데 그걸 어째?"      


"유씨 그럼 내가 여기서 춘기 좀 봐주고 따라갈게, 먼저들 가. 해가 짧어. 먼저 가!!"      


"오씨 몫은 적어질 거니까 그리 알어! 등신 같은 새끼 내려가랄 때 쳐내려 가지. 옘병!! 뭐해!! 서둘러!!"      


  유씨와 다른 사냥꾼들은 춘기에게 측은함과 짜증이 뒤섞인 눈길을 주고서 발을 재촉했다.     


"형님,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컥..!! 쿨럭..!!"     


"이 사람 무슨 말이야. 으하하핫!!운동 좀 해야겠어. 숨부터 쉬어. 물 좀 마시고. 나물 캐다가 산짐승 쫓아다니려면 빡세지. 괜찮어. 나 가죽쟁이라 고라니 가죽 벗기면 내 몫은 챙기니깐."      


"아, 그런가요?"      


"그럼 그럼, 자넨 나랑 있다가 슬슬 올라가자고. 혼자 있음 길 잃어. 알았지?"      


"네, 감사합니다. 형님."     


  오씨와 춘기는 잠깐의 침묵을 가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탕..!! 타당!! 탕!! 탕탕!!!!      


  갑작스러운 총포소리에 오씨와 춘기는 몸을 일으켰다.     


"오씨이이-!!!얼른 와요오!!두 놈 잡았어!!!!"     


  유씨의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그들을 불렀다.


"어어이!!!유씨이-!! 나 그쪽으로 갈게!! 자, 춘기 슬슬 감세!!"     


"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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